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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Apr 06. 2021

부잣집 자제분이 아닌, 그냥 아이였던 너에게

  

저는 2019년부터 서울시 마포구에 살고 있습니다. 마포구는 일단 강남이 아니고 강북 중에서도 한남동이나 성수동처럼 축적된 부의 냄새가 풍기는 곳은 아닌데요. 여의도나 광화문 쪽으로 출근하기 좋고 신축 아파트가 늘며 인기가 높아졌어요.      


누군가는 이곳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마포구는 자수성가한 맞벌이 3040 부부의 이상향이자 입성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마포구에는 ‘그랑’ ‘프레스티지’ ‘한강’ 같은 단어가 이름에 붙어 있는 아파트가 많은데 이 주변으로 요즘은 강남에서 이름을 떨친 입시 학원들이 옮겨오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건물을 사줄 정도는 아니지만 공부 머리는 물려줄 수 있는 사람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공부 시키는 게 그나마 제일 가성비가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마포에는 많거든요. 이 점은 가까이 있는 목동도 비슷하지만 목동은 아이에게 올인하는 전업주부 비중이 높다면 마포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민하는 워킹맘이 대세인 것 같아요.      


저는 2019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니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공유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 내 이름이 아니라 아이 이름 뒤에 ‘맘’을 붙여서 서로를 부르는 사람들과 종종 만나게 되더군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엄마들의 성향과 정보력이 극도로 달라 신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엄마는 전집을 한쪽 벽에 가득 채우고 매일 읽힌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벌써부터 영어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후 4시쯤 어린이집 현관에 앉아서 내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보여요. 그 짧은 순간에 마주치는 건데도 집에서 신경 써서 키우는 것 같은 아이들은 유독 화사하더군요.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 재질의 연한 색 옷을 딱 맞게 입은 아이들.      


어릴 때 어른들이 왜 그렇게 자주 “아버지 뭐 하시냐?”고 물어봤는지 바로 알았어요. 왜 어른들이 이렇게 함부로 대하나 억울해한 적이 많았는데 그 이유도 이해하게 됐어요. 티가 났던 거죠. 별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라는 게. 그러니까 막 대해도 뒤탈이 없을 거라는 걸 그들이 느꼈던 거죠.      



Photo by Michał Parzuchowski on Unsplash



한 정치인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걸 봤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사실은 그가 한 말에서 시작되었어요.      


부잣집 자제분한테까지 드릴 재원이 있다면 가난한  아이에게 지원을 두텁게 해서 이른바 교육 사다리를 만들자.”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자제분’ 으로 높여지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그냥 ‘아이 되는 현실.      


이 말을 듣자 서로를 ‘○○맘’이라고 부르던 이와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다 했던 대화가 생각났어요. 영화 <기생충>이 화제에 잠깐 올랐는데 그분은 영화를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해서 중간에 나가버렸다고 했어요. 극 중 송강호 가족에게 너무 분노가 치밀었다면서요.


“가난한 사람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어요. 게을러서 벌받는 거예요.” “음, 전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일단 어른은 그렇다 쳐요. 그럼 아이들은요?” 제가 물었고 그는 은밀하게 속삭였습니다. “그게 다 전생에 죄를 지어서 그래요. 이번 생에서 풀고 가야 다음 생에 그렇게 안 태어나는 거예요.”      


여기는 갠지스강이 아니고 한강 근처인데… 저는 경악해서 표정 관리하는 걸 잊어버렸고 이후로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공덕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날 일이 있어 점심시간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회사로 가는 길의 건물 2층에 키즈카페가 보이기에 제가 신기해했죠. 이런 오피스촌에 키즈카페가 있다니, 하고요. 결혼하지 않은 후배는 제가 근처에서 이 간판을 발견한 걸 더 신기해했습니다. 이 근처에 몇 년을 있었는데 자기는 못 봤다고요.


아이를 낳고 나니 거리에서 키즈카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이런 것이 유독 눈에 띕니다. 한때는 저도 후배처럼 길에서 카페나 회사 건물이 더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결국 사람은 지금 선 곳에서 시야를 확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조건과 관심에 따라 어떤 것은 지나치고 어떤 것은 확연하지요. 특히 개인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경험치, 그중에서도 전후의 격차에서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온도 차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입장 차이를 많이 경험하는 사람은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기에 주류는 못 되고 항상 관찰만 하는 이방인으로 맴돌게 되는 듯해요.     


지방에 살다 서울로 와보니 원래부터 서울 사람이었던 이들은 지나쳤을 풍경이 보였습니다.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자 생활을 오래 하다가 기업 홍보 일을 하게 되자 다른 사람들은 다 이런 걸 겪으면서 꾸역꾸역 참고 있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혹스러움에서 시작된 책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입니다.


하루 3천 원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우던 사람에서 점심 한 끼에 만 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이 되자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넘겼던 이들과 너무 멀리 있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낙차를 보며 쓴 책이 최근에 낸 <더 좋은 곳으로 가자>이고요.


새롭게 시작하는 이 연재의 내용은 딩크였던 제가 아이 엄마가 되며 새롭게 보이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제가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단 누구의 삶도 상을 받거나 벌받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이 앨 통해 인생을 두 번 사는 기분이 듭니다.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어서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른들도 각자 자기가 아이일 때 받고 싶었던 대우를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었던 엄마로서의 상황과 육아서를 읽다 어른에게도 대입하고 싶어진 표현을 기록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은 요즘 어떤 간판 앞에서 자주 발걸음을 멈추는지도 궁금하네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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