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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May 11. 2021

어른에게도 '슬럼프' 대신 '원더윅스'라 부른다면

Wonder! wonder weeks


원더윅스(Wonder Weeks)라는 표현을 아시나요? 저는 엄마가 되며 이 표현을 처음 알았는데요. 잘 먹고 놀던 아기의 생활패턴이 갑자기 바뀌거나 떼가 늘어나 양육자를 힘들게 하는 시기를 두고 “우리 애가 요즘 원더윅스인가봐요”하는 식으로 주로 사용합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성장통인가 봐요”가 있겠네요. 


이런 원더윅스는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주기적으로 찾아옵니다. 육아서에서는 이 같은 기간이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피해 갈 수 없고, 이때를 지나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쑥 큰다고 말합니다. 약속된 땅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 고통이 아니고 놀라운 주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거지요.      


육아서에는 원더윅스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적혀있었습니다. 일단 아이가 울고 짜증 낼 때 혼내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이 낯설어서 너도 적응하느라 힘들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땐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았는데 이젠 다 알아서 해야 하니 힘들지?’ 

‘너는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하지?'

라고 생각해주라는 겁니다. 


그렇게 공감해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면 아이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먹기가 쉽다고 합니다. 아기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니까 이런 반응을 접하면 “세상은 내게 우호적인 곳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요. 믿는 구석이 있고 즉각적으로 이해받는 기억이 축적될 때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해볼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원더윅스, 원더윅스…. 그러다 문득 어른에게는 이 같은 상황을 뭐라고 부르나 생각해 보았는데요. 잠을 못 자거나 또는 너무 많이 자거나 기분이 저조해 짜증이 나고 입맛도 없는 시기. 아무리 생각해도 딱 맞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굳이 비슷한 말을 찾아보면 어른들은 이럴 때 보통 ‘슬럼프’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어요. 이 둘의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서 원더윅스에는 희망이 있으나 슬럼프에는 절망만 있고 원더윅스엔 마침표가 있는데 슬럼프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듯 느껴졌지요.      


슬럼프를 마주했을 때 어른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생각해보니 우리는 육아서에서 가르치는 것과 정반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만 골라서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런가 하면서 비교하고 비난하기, 힘들었겠다고 공감하거나 위로하기는커녕 자책하기. 


그러나 아이에게만 처음 맞아 당황하는 것들이 있는 게 아니고 어른에게도 그때그때의 순간은 모두 처음이고 유일합니다. 배우 윤여정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죠. “인생 60이 되어도 몰라, 나도 67살은 처음이야.”    

 

Photo by Zoltan Tasi on Unsplash



저 또한 슬럼프를 종종 겪습니다. 독자와의 만남을 할 때 가끔 “작가님도 혹시 슬럼프를 겪으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같은 질문을 받곤 합니다. 재밌는 건 이런 질문을 해놓고도 제가 그렇다고 답하면 화들짝 놀란다는 거죠. 항상 남의 앞면만 보게 되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처럼 양면이 있다는 걸 자꾸 잊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한 독자분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아 이렇게 대답했어요. “이번에 신작을 냈는데, 최근에도 그런 기분을 느꼈어요. 이번 책은 어찌어찌했는데 다음 책도 무사히 낼 수 있을까? 독자들이 나를 계속 찾아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겁나서 얼어붙을 때가 있어요.” 대답이 끝나자 질문하신 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당차고 걱정 없어 보이는(?) 제게 그런 두려움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어쩐지 위로가 됐대요.      


그럴 때는 또 어떻게 이기느냐, 하면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냥 때가 되면 헤어질 뿐이죠. 예전에는 슬럼프가 왔다고 느낄 때 최대한 빨리 떨쳐버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운동을 해서 몸을 지치게 했죠. 몸이 힘들면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그런 방법도 유효하긴 했지만 주로 언제 슬럼프가 오는지를 생각해보니 중요한 일이나 오래 준비한 것을 끝냈을 때더군요. 또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는데 성과가 빨리 나지 않아서 초조할 때였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시작을 앞두고 있을수록 슬럼프가 온다고 느끼는 걸 알게 되자 슬럼프란 결국 본품을 사면 따라오는 덤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잘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슬럼프도 없을 테니까요.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풍기는 특유의 냄새를 맡고 슬럼프는 찾아드는 거니까요.      


책에서 ‘원더윅스’라는 표현을 보고, 육아전문가들이 그럴 때 ‘너도 지금이 처음이라 힘들겠구나’ 공감해주면서 더욱 따스하게 대해 주라는 조언을 보고, 저는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주려 노력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대해주려고 합니다. 


육아서를 읽을 때면 대부분의 조언들이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어른들에게도 결국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원리는 비슷하다는 걸 느낍니다. 


여러분도 한때 아이였으니까, 그 아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마음속에 있으니까 갑자기 스스로가 미워지고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봐 주세요. “쑤욱 크려고 지금 힘들어하는구나.” “또 한 번 매듭을 짓고 가려고 지금 힘든 거구나.” 


놀라운 주기를 지나고 나면 더 나은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지금은 다만 적응기간인 거라고요. 그러니 여기엔 끝이 있고 우리에겐 반드시 다음이 있다는 것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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