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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Oct 10. 2016

현실은 다이소여도 취향은 킨포크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과 수많은 시다의 삶


다음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을 보다 보면, 김정연 작가를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독립한 20~30대의 여성이라면 그녀가 그리는 디테일에 많은 부분 공감할 것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안동에서 서울 청파동으로 와 살고 있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삶을 그린다. 시다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며 상자 안에 햄스터를 넣어 키운다. 시다의 거주 환경은 종종 햄스터와 비교되어 보이기도 한다.

시다의 이름은 “~이시다”라고 할 때의 높임을 받는 자로서의 인생을 목표로 지어진 것이지만, 실제 모습은 ‘시다바리’ 할 때의 그 ‘시다’로서 최하 계층의 인간에 가깝다. 만화는 시다라는 이름의 의도와 그 실제처럼 이상과 현실의 격차에서 오는 쓸쓸함과 소외를 그려낸다.

시다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닐 정도로 공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실제로 그가 택할 수 있는 취향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취향은 킨포크여도 현실은 다이소인 것. 포스트잇처럼 있었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만 허락되는 것이다. 구매의 기준이 가성비로만 결정되는 임시의 삶에서는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다.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중


다이소에서 그나마 덜 별로인 걸 찾아내는 일 말고, 가격 먼저 본 뒤 디자인이나 재질 같은 걸 보는 것 말고, 인터넷에서 가격순으로 보기를 옵션으로 설정해놓고 물건을 보는 일 말고 진짜 마음에 든 것을 가져보고 싶었다. 돈이 없었으므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입고 들고 써야만 했다. 그것들은 내가 골랐으되 고른 것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내 취향을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이것 좀 촌스럽지 않아?


패션지를 읽다 보면 자신의 높은 안목을 어필하며 독자의 취향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훈계하는 톤의 칼럼을 종종 접한다. 그것이 잡지의 생리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문장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그런 식의 비난이 적절한가? 많은 취향들이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 타협의 결과일 뿐이지 않은가? 그런 글 앞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줄 몰라서 후진 취향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고요”하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또는 <위대한 개츠비>의 유명한 문장, "혹여 남을 비난하고 싶어지면 말이다. 이 세상 사람 전부가 너처럼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걸 기억해라"던 주인공 아버지의 말을 전달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북카페 컨셉으로 만든 거실



붉은 몰딩의 중문이 있던 거실의 예전 모습



‘내 방’을 가져본 적 없던 나는 항상 “우리 집에 놀러와”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결혼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내 공간을 내가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접시부터 침대,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것을 모두 골랐다.예산에 맞추긴 했어도 단단하고 단아한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전셋집이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모두 바꿀 순 없었지만 집주인과 협의해 붉은 중문을 뜯어낸 후 흰색 심플한 벽지를 쓰고 깨끗하게 몰딩을 칠하고 원목 느낌이 나는 장판을 깔았다.

마켓비, 두닷, 일룸 등의 중저가형 가구점에서 대부분의 가구를 샀다.텔레비전은 사지 않았고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 대신 60만원짜리 냉장고를 샀다. 누렇고 지저분한 씽크대엔 시트지를 붙였고 10 여년 전 유행했던 꽃모양 조명은 별모양의 모던한 조명으로 갈아 끼웠다. 100%의 집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집에 가구가 모두 들어온 날엔 너무 좋아서 거실에 한참동안 가만히 누워 집안을 둘러 보기만 했다.


화이트 무광 시트지를 붙인 씽크대와 작은 냉장고가 있는 부엌



손잡이도 제대로 없던 예전의 낡은 씽크대


잘 알고 있다. 최소한의 비용을 들인 이 정도의 공간조차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그래서 인테리어 잡지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류의 말, "돈이 없어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멋지게 공간을 변신시킬 수 있어요" "결혼 전이어도 취향대로 꾸미는 일을 포기하지 마세요" 식으로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들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니까.

취향에 관해서라면 나는 결핍이 많은 만큼 욕망이 많은 인간이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충분히 가져본 후에 해보니 별게 아니었다고 진심으로 말할 것이다. 들끓는 욕망 앞에서 괴로운 사람들에게 ‘억울하면 출세해’라거나 ‘포기하면 편해’ 라고 말하는 세상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계급의 사다리를 걷어차 놓고 “지금 네 취향은 별로구나. 더 다른 선택지가 있단다”라고 하는 것은 기만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햄스터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시다를 볼 때 울컥한다.  낮은 최저시급과 취업난, 미친 물가와 부동산의 나라. 결혼과 출산마저 선택 아닌 포기를 종용받는 이 곳에서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옵션을 보장 받는 일은 요연해 보인다.

나였던, 그리고 나와 닮은 수많은 시다들을 생각한다. 기침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살던 고시원에서 만났던 '시다'들도 떠오른다. 포기하는 것부터 익숙해지지 않는 것,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보는 걸 멈추지 않는것. 그걸 원했을 뿐인데. 사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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