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정 Dec 29. 2017

새해에는 자존감 도둑 떠나보내기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사람과 헤어져"

어린 시절, 연말이 되면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뀔 때마다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에 부담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꼈던 것 같다. 새 반의 친구들이 낯설어 점심시간이 되면 친한 아이의 반에 가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렇게 같이 도시락을 먹다 보면 어느 날 친구가 같은 반의 새로 사귄 친구를 데려와 함께 합류시켰다. 그 타이밍이 내가 다시 반으로 돌아가 친구를 사귀어야 할 때였다.


그맘때 아이들끼리는 월례 행사처럼 돌아가며 서로 왕따를 시키곤 해 무리에서 내쳐질까봐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난다. 어릴 때 친구는 인생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내 기쁨과 슬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이들이었다.


친구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친구가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를 지키는 것이 ‘의리’라고도 이해했다.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평생 친구’라는 말에 매여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관심사가 달라져 만나도 예전 이야기밖에 할 게 없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못하고 돌아올 때는 씁쓸하면서도 집에 오면 카톡방에 이런 말을 쓰곤 했었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담에 또 보자.”


친구뿐 아니라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오래 만났는데 어쩔 수 없지’ ‘이걸 섭섭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기적인 거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관계에서 불행을 느끼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이로 인해 더욱 자존감이 낮아져 나중에는 헤어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특히 나이를 먹으며 부모, 친구, 연인, 직장 상사 순으로 자신을 휘두르려는 사람들도 자꾸만 바뀌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삶의 어느 한때에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아본 경험이 없으면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휘둘리게 된다.


만날수록 해악이 되는 자존감 도둑의 특징에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런 이들과 만나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사람과 헤어져.”


ILLUST 키미앤일이


첫 번째는 나를 감정쓰레기통 삼는 사람이다. 부모와 자식 간, 특히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딸에게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을 비난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딸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면 ‘자기 아버지와 똑같다’ ‘이기적이다’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감정받이를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왔다면 성인이 되어 최대한 빨리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볼모로 한 정서적 협박에 시달려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다.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항상 자신의 힘듦만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언제나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런 이들은 성숙하지 못하다. 자신의 불행에만 함몰되어 당신을 존중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걸핏하면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오래 만나면 부작용이 생긴다. 관계란 애초에 한쪽이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당연히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고 트러블이 있을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좋을 때가 아니라 좋지 않을 때 민낯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공감 능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 말에는 ‘그러니 네가 이해해야 한다’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관계란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난 원래 그렇다’고 하는 이는 관계에서 자신이 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악용하는 행태를 보인다.


‘난 뒤끝은 없잖아’ ‘내가 사차원이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아무렇지 않게 남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말도 주로 한다. 이것이 ‘솔직한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식적이라서 그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 관계에는 서로 지켜야 하는 선이 있고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심하게 비판적인 이중성이 있는 경우도 많아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런 이를 옆에 두면 자꾸만 지적당해 자존감이 낮아지면서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속으로 억울함이 쌓이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되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하며,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 친구’라는 개념도 생각해보니 억지스러웠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책’이 계속해서 바뀔 수밖에 없듯, 성장하고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한 주변에 두고 싶은 사람도 바뀌기 마련이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됐더라도 어느 순간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잠시 거리를 두고, 뾰족한 말을 던지는 이에게는 여러 번 경고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최대한 옆에 두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사람들이 곁에 다가오곤 했다. 나 또한 모든 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노력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은 성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서서히 흡수해왔다. 그러니 보석함에 보석들을 골라 담듯 주변에 사람에 두는 일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이들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가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보다 네가 훨씬 더 소중해. 옆에 있으면 울게 되는 사람 말고 웃게 되는 사람을 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