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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ul 05. 2019

숨 참으세요.

다행히 암은 아니세요, 축하드려요.




손을 잡아줬다.

잡아 준 그 손이 싫지만은 않았다.

     

어떤 여자들 무리가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손을 뿌리쳤다.

     

꿈속에서도 나는 나였다.

아무렇지 않게 잡은 그 손을 계속 잡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타인의 시선을 꿈속에서조차 견뎌내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미웠다.

꿈이었지만, 손을 잡아줘서 조금 덜 슬펐는데.. (덜 외로웠다고 해야 맞는 걸까?)

     

이번 주 수요일엔 회사에 연차를 쓰고 병원에 갔다.

지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였다.

사실 혼자 가도 상관은 없었는데 욱이가 함께 가주겠다고 먼저 말했다.

나는 늘 이런 부탁에 약하고, 그런 나를 잘 아는 욱이가 함께 가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을 안다.

오래된 친구는 이런 부분이 좋다.

     

병원에서는 이름 대신 그날만 부여된 고유번호로 불린다.

아침 일찍 예약해서인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암은 아니세요, 축하드려요”

     

조금 이상한 축하를 건네받고 진찰실을 나왔다.

내 몸에 마리모 2마리를 키우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기적으로 보호, 감찰이 필요한 녀석들이 몸 안에 두 마리나 생기다니.

     

올해 초에 조금만 살살 잡아당겨 달라고 엄살을 부린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담은 그래서 그게 왜 생긴 거냐고 물었는데

아차, 그걸 선생님께 안 물어봤다.

이유가 있을까??

     

MRI 통돌이는 엄청 크고 시끄러운 무덤 같았는데

계속 헤드폰으로 같은 말만 반복해서 들렸다.

     

숨 참으세요.

숨 쉬세요.

     

거기 누워서 파도를 떠올렸다.

왜 파도였을까?


사람들이 죽음에 관련된 시를 써왔는데

시는 각기 달랐지만, 각자의 슬픔이 시 안에 있었다.

사람들의 시를 읽고 즐거운 죽음에 관해서 쓰고 싶다고 일기장에 적어뒀는데 여태까지 쓰지 못했다.

     

내 장례식에는 국화 대신 그동안 내가 사 모은 스티커를 국화가 있는 자리에 놓아두고 싶다.

조문객들이 국화 대신 각자 취향에 맞는 스티커를 골라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영정 사진에 붙여주면 기쁠 것 같다.

점점 사라지는 얼굴 위로 그 이상하고도 오묘한 스티커 조합에 픽, 하고 웃음이 나와 슬픔을 잠시 잊었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빈자리 때문에 부재를 느끼는데

죽은 자들도 살아있는 자들의 부재를 느끼는지 궁금하다.

아직 죽지 않아 모르겠지만.

꼭!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만큼 그들도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조금 덜 억울할 것 같으니까.






하늘에 계신 모든 분들께...


저는 조금 더 여기 머물러도 된다는 소식을 하얀 옷을 입은 분께 전해받았습니다.

그러니, 너무 낙심하지 마시고

만나는 그날까지,

잘 지내고 계세요.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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