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 Jun 21. 2022

지원자도 회사를 면접 봅니다.

면접이 끝나면 고객이 되는 사람에 대한 예의


이제는 백수생활을 끝내고 한 회사에 들어가 한 달 넘게 일하고 있지만, 백수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잊지 못할 경험을 꼭 기록해놔야 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부터 뭐든 일이든 할 수 있다고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모르겠고 일단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취업했다 퇴사했다를 반복했다. 


여러 일을 하면서 그렇게 잘 맞는 일도 없었지만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일도 없었다. 딱 하나 느꼈던 점이 있다면 '아 그래도 어떤 일을 하든 글을 쓰는 일을 다른 일보다 즐거워 하는구나. 글을 쓰는 일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좀 더 명확하게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SNS 콘텐츠 마케터 직무는 스트레스도 높았지만 그래도 '출근' 해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감은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 - '팀장' - '실장' - '디자인 팀장' - 다시 '나' 이런 일의 비횰율적인 순서로 진행되는 것만 빼면 야근을 하면서도, 혹은 퇴근해서 개인 시간을 써가면서 기획안을 만드는 건 꽤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업무에 조금 익숙해 지려는 찰나 회사는 망했고 권고사직을 당했다. 한 두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어야지.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는지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지원했다. 서류가 탈락하면 서류를 보완했고 서류가 합격하면 가고 싶은 이유를 찾아가며 면접을 준비했다. 


그렇게 열심히 지원하던 시기에 과거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과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다는 업무가 합쳐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은 회사에 지원했고 하루 만에 [서류합격] 이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꽤나 빠른 합격 소식에 회사 사이트, 구글링을 통해 면접을 준비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아무리 늦어도 다음주엔 오겠지. 아 많이 바쁜가보다 다음주엔 꼭 면접 연락이 오겠지." 생각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면접 연락은 오지 않았다. 


채용 과정에 대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흥미로운 이력서에 합격을 시켰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게 아닌가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그 사이 현재 다니는 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고, 최종합격이란 결과를 받아 연락이 오지 않는 회사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기로 다짐했다. 


지금 회사에 출근하고 이틀 정도 지나서였을까? 한 달 전 서류합격 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진행하고 싶다며. 거절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래도 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회사였기에 면접에 응했고 회사가 판교에 위치해 있기에 면접은 화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미리 잡아놓은 제주도 여행으로 연차를 쓰는 날 다행이 화상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침에 부랴부랴 일어나 준비를 하고 화상면접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미 회사에 입사했지만 사람 인연이란 게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기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면접 마지막에 면접에 대한 결과는 어느정도 걸릴지 여쭤보았다. 서류합격 하고 한 달 만에 면접 연락을 받은 나로써는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면접에 대한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요?"

"최대한 빨리 알려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굉장히 편한 분위기에 면접은 마무리 되었고, 그래도 결과가 빠르면 이 번주, 늦어도 다음주엔 나오겠지 하며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라타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꿔놓았다. 제주도행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들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행복한 기분만 들던 그때, 비행기 모드를 해제한 핸드폰은 알람이 쏟아졌고 거기엔 'OOOO 탈락' 이라는 알람도 들어와있었다. 


지원하고 서류합격 (하루) / 서류합격 후 면접 (한 달) / 면접 결과 (2시간 반) 

굉장히 무시당하는 기분과 더불어 즐겁게 시작해야 하는 여행에서 화부터 먼저 나기 시작했다. 탈락한 이유야 찾으면 수백가지가 넘게 나오겠지만, 서류 합격 후 면접을 한 달 만에 보자고 연락했으면 면접 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하루 이틀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면접에서 탈락한 나는 그 사람들이 새로 개발하고 있다는 서비스의 고객이 될텐데, 면접을 준비하면서 설치했던 어플을 삭제했다. 그들이 만든 어플은 다른 회사에서는 더 고도화하여 만들어놓은 것이 있고 나는 이 회사의 어플을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다시 설치하지 않을 거 같다. 


채용시장이 커지면서 헤드헌터, 리크루터 등 인재를 뽑는 일에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졌을 것이다. 물론 같이 실무를 진행해야 하는 팀 입장에서 면접을 보고 단 2시간 30분 만에 '이 사람은 부족해' 라고 정말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과정에서도 빠른 채용 프로세스를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서류합격을 시켰으나 막상 면접을 보자니 다른 사람이 우선순위로 들어왔고, 혹은 다른 사람이 입사하기로 했다가 입사를 취소하여 급하게 면접을 잡은 게 아닐까? 


채용과정을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2시간 30분만에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사유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고, 좋은 이미지로 회사의 서비스도 이용하는 고객 유저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회사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기까지는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지 않는 다면 그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 그리고 주변에서 그 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내 입에서는 긍정적인 얘기보다 부정적인 얘기가 먼저 나오게 될 거라는 것. 


회사만 사람을 면접 보는 게 아닙니다. 지원자도 회사를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집이 아니라 동네를 떠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