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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Jul 15. 2022

나의 할아버지 장례 일지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눈물도 흘렸던 나의 할아버지

'죽음'이란 단어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던, 29살 아직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누군가에게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해 글로나마 적어본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눈물도 흘렸던 나의 할아버지 장례 일지.


22.07.10

이상했지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 그런 날이었다. 옷장에 있는 옷을 꺼내 빨래를 돌리고 구석구석 방 청소를 마친 뒤 잘 정돈된 침대에 누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그때, 친구들과 강릉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친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그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오빠는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 들었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내가 지금 뭘 들은걸까. 아니겠지. 거짓말일거야. 믿기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통화했는데, 목소리 좋으셨는데, 괜찮아지고 계셨다고 했는데. 손이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침이 안왔으면, 지금이라도 많이 놀랐냐며 할아버지 괜찮다고 웃으면서 일어나셨으면 하는 생각만 계속 했다. 진짜가 아니길 내가 내일 가야 하는 곳이 할아버지 장례식장이 아니길 일어나지 않을 기적에 미친듯이 울면서 빌었던 거 같다.


22.07.11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조부상 관련한 상황을 전달하고 태안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동안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울면 진짜가 되어버릴 거 같아서, 눈물도 안나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줄 모르고 화려하게 받았던 네일아트를 손톱으로 긁어서 떼어냈다. 엉망진창이 되는 손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를 보낸 마음이 더 아파서...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든 생각은 '내가 여기 올 자격이 있나?' 였다. 그렇게 보고싶다고 한 번 오라던 할아버지의 말에 '갈게요~ 꼭 갈게요~' 말만 했던 내가 여기 와서 할아버지 앞에서 인사를 할 자격이 있을까? 주저하다가 들어간 장례식장엔 가족들이 다 모여있었고, 가자마자 상복으로 갈아입고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손녀가 왔는데, 손자들 중에 유일한 손녀 한 명인 내가 왔는데 왜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지, 할아버지 보러 가겠다며 일정을 계속 미뤘던 나한테 너무 화가 났고 너무 속상했고 너무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나 벌써 29살이야ㅠㅠ' 하며 내가 나이 먹는 건 속상해 하면서 할아버지는 나보다 몇배는 더 빠르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언제나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려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는 날까지 손자, 손녀, 가족들 그리워만 하다가 간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워서 울었다. 이깟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게 뭐 힘들다고 안 보여줬을까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22.07.12

장례는 할아버지 성격처럼 급하게 치뤄졌다. 울고, 울고, 또 울기를 반복했다. 하늘도 아는지 장례를 치루는 내내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술을 마음껏 마시던 날을 꼽으라면 이 날이 아닐까 싶다. 화장이 끝나고 마지막 모습을 보는데 뼈가 없었다. 상체는 뼈가 있는데 하체는 뼈가 없었다. 미친듯이 울었다. 너무 아프고 그리워만 하다 간 할아버지가 안쓰러워서, 그렇게 너무 외롭게만 있다간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할아버지의 웃음이 너무 생각나서, 학교가야해서 혹은 출근해야해서 서울로 올라간다고 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배웅해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래서 울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나는 먼저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삼우제를 지내기 위해 남아있었고, 드디어 버스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참고있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아팠고, 그냥 슬펐고, 또 슬펐다. 아직도 핸드폰에 할아버지 번호는 '할아버지'로 저장되어 있고, 전화를 걸면 할아버지가 받을 거 같은데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할아버지를 만질 수 없다는 게, 그게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파서...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삼오제까지 지내고 온 오빠는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들을 한 묶음 들고 왔다. 너무 어릴 적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가족끼리 제주도 가서 찍은 사진. 할 수 만 있다면 사진 속 할아버지를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남아있는 자식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한다. "한 번 더 얼굴 보여드릴 걸" "한 번 더 통화 드릴 걸" 그 아무리 잘해도 남는 건 후회라는 걸.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미친 듯이 얘기해보는, 할아버지 사랑해요. 이제 편히 쉬어요. 꼭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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