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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n 26.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0. 첫 만남

참을 수 없이 강렬했던 첫 만남은 소박한 동네 술집에서였다.

분명 명목은 독서 모임이었지만 도대체 누가 책을 좋아하긴 했을까 싶은, 책을 매개체로 사실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이들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C는 사실 실망할만한 기대치조차 없었다. 놀라울 만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문학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향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나섰던 독서 모임에서의 모두의 첫인상은 이곳에는 향이란 게 있긴 할까 싶은 마음 뿐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소름이 끼치는 묘사에 미처 다 읽지도 못한 그였지만, 이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작가는 향기라는 단어보다 완벽하게 인간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다는 것. 여하튼 모임은 무색무취였다. 어느 테이블은 본인이 얼마나 다독가인지를 떠들었고, 어느 테이블은 책을 좋아하려는 마음에 나왔다는 말로 시작하며 책 이야기를 오늘만큼은 해낼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가벼운 첫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독가인지를 떠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C는 생각한다. 한권을 읽어도 인생을 바꿀 만큼 곱씹을 수밖에 없는 책을 만났다면 그것이 더욱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됐어, 그 옆의 테이블보다는 가까운 마음이니까, 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채울만한 시간이 지날 즈음 C는 주섬주섬 일어날 채비를 하며 이내 나가봐야 하겠다고 말을 꺼낸다. 그즈음 C의 비어 있던 앞 자리에 그가 들어섰다. K는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에 화려한 패션으로 들어섰다. 화려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묘사였을지, 의문이 들지만 여하튼 C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 사나워, 라고. 하지만 그 말은 솔직한 표현은 아니었다. 매력적인 K의 첫 등장에 조금, 더 앉아있다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건, 두시간간의 모임 동안 처음 든 흥미로운 생각이었으니까. K의 첫 등장의 첫 마디는 당신들은 어떤 책을 사랑하시나요, 정도였을 것이다. 각자 머뭇거리면서 한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K는 아마 그 어느 대답에도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문학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관점을 말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저는 이런 사람이기에 이런 주제에 공감이 잘되어서 좋았어요, 정도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하지 않아요, 당신이 어떤 가치를 중히 여기는지만 궁금할 뿐, 그 이후에도 당신이 흥미롭다면 후속 질문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엿을 것이다 분명. C는 K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을 그는, 저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좋았어요. 라고 운을 떼었다. K의 눈빛은 들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생기를 띄었다. 왜죠, 왜 마음에 드셨어요, 저는 그 책을 세 번을 읽었고 당신이 마음에 든 핀트를 꼭 알 수 있을 것이고 알고 싶어요, 정도의 말이었다. C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더 이상 본인이 몇층은 위에서 사람들을 파악하면서 대화하던 시간이 끝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낮아졌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시선을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눈 마주침이 가능해진 첫 순간이라 오랜만의 긴장감이었을 뿐.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던 토마시와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가득 찬 테레자의 이야기를 마치 사랑 이야기인 양 풀어낸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더 사랑을 이야기한 게 되어버린 게 매력적이었어요,  정도의 대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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