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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n 26. 2023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1)

01. 한강

한강 나들이는 그로부터 머지않은 날이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머리칼을 넘길 때 손가락 사이의 시원한 스침이 기분 좋은, 그런 가을날. 이런 가을날은 역시 독서지,라고 생각을 하며 C는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한 한강을 골랐다. 돗자리를 빌려오랴, 한 명씩 분단위로 도착하는 멤버들을 안내하랴, 정신없이 모임을 주선한 그는 보랏빛 하늘이 되어갈 무렵에야 한숨 돌리고 앉았다. 각자 독서하시고 7시부터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가을의 7시는 꽤나 어둑해진 이후였고 서로의 얼굴을 간신히 알아보며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소개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다들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고, 나이는 간신히 서른을 넘기거나 하는 정도였다. 저는 여의도에서 방금 퇴근하고 온 금융업 직장인입니다,라고 소개를 시작한 한 사람은 도저히 책에 대해 관심을 붙이기가 어려워서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떤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기에 저도 독서를 습관화하려고 노력한 지 어언 두 달째입니다,라고 말한 이도 분명 직전 소개한 이의 친구 거나 친인척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줏대 없이 취미를 수동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드려 드세요,라는 생각은 애써 얼굴에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C는 애쓴 보람은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당신이 어느 사무실에서 어떤 문서를 작성하는 몇 년을 살아온 사람인지 왜 말씀주시 나요 책이야기나 하세요, 싶으면서도 용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있던 모두 들이였을 것이다.


약속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도착한 K를 맞이하러 나간 건 단연 C였다. 이토록 반가운 얼굴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려 나가서 데려온 그는 K를 앉힐 자리가 대형 원형의 반대편 자리밖에 없음에 아쉬웠지만 어쩔 도리 없었을 것이다. K는 사회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소란스러웠던 자리를 정리하려고 운을 띄웠다. 다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군가요, 좋아하는 작품이어도 좋아요,라고. C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사람은 마침 노르웨이의 숲을 가지고 왔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하루키로 넘어갔다. 하루키의 작품은 언제나 밑바닥의 감정, 특히 상실의 감정에 대해서 다루죠,라고 한 사람이 말했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K는, 그렇다면 상실을 표현하는 그만의 형용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죠?라고 묻고는 기다렸다. 침묵 아닐까요,라는 대답을 C는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K는 흥미롭다는 웃음을 지으며 그이에게 물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도 보셨겠네요. K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게 분명했던 그는 신난 아이와 같이, 영화도 봤는걸요 정말 좋아해요,라고 대답하며 까르르 웃어내었다. K는 그의 신난 반응에 주춤 한걸음 물러서 듯한 말투로 이어갔다, 영화 좋지요 저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야외극장도 찾아가서 보는데, 다들 에무시네마라고 아세요? 그 영화관에서 곧 개봉하는 작품을 볼 계획이거든요. C는 그 영화의 이름을 잊을 수 없었다. 왜인지 그 영화를 보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강렬했고, 그 강렬함은 K를 향한 강렬함인지 그 대화였던 건지 상황이었던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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