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은 시간이였기에 두어 테이블이 더 속닥이고 있던 참이였다. 한바퀴 둘러보다 눈에 치인 그는 보다 일찍 들어왔었는지 벌써 안주는 거의 다 비워진채, 반쯤 남은 뱅쇼의 희미해져가는 온기와 함께 있었다. 그가 앉아있던 자리는 특유의 세기말 분위기로 가득찬 책들이 꽂혀있는 벽면을 바라보는 작은 책상이였다. 저렇게나 촌스러운 빨간색, 초록색 표지가 이렇게나 잘 어우러지는건, 그도 그렇듯, 시간을 보낸 자들의 여유에서 오는 아름다움이였을까. 뒷모습은 꽤나 배웠을듯한 학자의 모습이였는데, 머리는 부스스했고, 더벅머리에 꽤나 마흔 체형이였다. 투박한 연필과 종이사이의 마찰소리는 자연스레 그를 채워주는 배경음악과도 같았다. 수권의 책을 번갈아 펼치더니 적어내려가는 손글씨는 너무도 궁금한 내용을 담았을것 같았기에, 우선 일어서보았다. 조심스레 그의 의자 뒤편으로 다가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조용히 연필을 내려놓고선 식어버린 뱅쇼를 한모금 더 들이켰다. 이 책들, 소개시켜드릴까요, 라는 자연스러운 첫마디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끄덕였다. 서너권 책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그의 얼굴은 지쳐보였지만 그럼에도 청년의 열정은 느껴질만한 나이대의 모습이였다. 실망이였을까, 기대와 다른 어린 외모는 사실 그에 미치지도 못하는 떨어지는 흥미 정도 였을것이다. 설레임은 아주 작은 부분만 보았을때, 나머지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려움은 안정감으로 바뀌었고, 나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의 옆자리는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