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이 쌓인 눈.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아니 하필 눈이 왔는데 우울감에 잠식당해버리기.
그런 김에 눈 오는 날 회사에서 몰래 글이나 끄적여본다.
회사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건 정말 안정적이다. 묵직하고, 아니 무거운 건가 무거운 안정감이 있다. 크나큰 건물에서 넓디넓은 오피스에서, 어째서 내 공간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 빼고는. 아, 서울도 그렇지. 그렇게 빼곡하게 아파트로 점철되어 있으면서 내 공간 하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자랑이다. 애교 많은 두 고양이와, 내가 좋아하는 옷들로 가득 찬 방을 가지고, 따듯한 카펫이 깔려있는 내방이 있다. 그렇게 공간에 대한 우울감은 벗어난 줄 알았다. 근데 이런,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길 줄은 몰랐다.
회사에 암막커튼으로 분리된 공간이 있는데, 안마의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그 공간이 내 도피처였다. 하지만 내게 좋은 공간이 남에게 좋지 아니할 리가. 언제나 인기가 많은 그 공간은 이제 내어주기로 했다. 인기 많은 공간을 내 공간이라 칭할 순 없어. 그럼 어디로 도망갈까. 핫데스크존이라는 공간이 있다. 학생 때 다니던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나뉘어있는 책상들이 줄지어있는 공간이다. 왜 핫데스크 일까. 불이 나게 일이나 하라는 걸까. 이름을 잘못 지은듯하다. 열석이 넘는 자리 중에 항상 차있는 자리는 두 번째 칸, 내 자리뿐이다. 이 공간은 이제 내 공간이다. 나만이 이 공간을 좋아하고, 편안해하고, 몰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찾을 때 그저 멀리서 소리를 지르곤 한다. 애니! 그럼 저 여깄 어요! 한마디로 공간을 들키고, 사람을 마주하고, 가끔 자리도 옮긴다. 괜찮아. 부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내 공간이다. 공간이 생겨서 좋다. 혼자가 좋다. 혼자 운동하고 간단하게 밥을 먹고 돌아오는 점심시간도 좋다. 혼자 초콜릿 하나 까먹으면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가 좋다. 그럼 뭐 해, 커피는 우울함에 치명적인걸. 오늘은 커피도 못 마시는 날이다. 기름을 부을순 없다. 우울함에 소화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