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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l 01. 2023

농담 (1)

허영의 그림자 속 예술의 향유 - 04.시작

지독한 농담이었다. 


밀란 쿤데라로 이어진 인연은 앙칼지게 악독하고 나약했다. 


마사 누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적 지위'에 대한 개념에 반박했다. 상대적 지위의 하락이 두려워서 분노하고 보복을 결심하는 것이라고 할지언정, 삶이 명성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지 않았느냐고, 더욱 실질적인 요소인 사랑과 일과 가족이 있지 않으냐고. 그녀는 지수 같은 사람은 분명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 사회적인 시선, 그것을 위한 사랑의 관계와 모든 선택이 존재하는 삶은 살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이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수는 여전히 사회의 시선이 중요했고, 그러한 본인에 우주를 끼워 맞추고 싶어했다. 우주는 그래 줄리 만무한 위인이었다. 


가을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계절이다. 긴 장마 끝에 지겨울 법도 한 비 내림이 어쩐지 시원한 그런 가을비 같은, 그런 존재가 영화제가 아닐까라고 우주는 말했다. 몇 날 며칠을 영화를 누리고 그에 대해 나누고 곱씹고 다음 영화도, 다음 영화도, 그렇게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축제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영화제에 가겠노라 지수에게 말했을 때 지수는 우습지도 않게 두 장의 항공편을 같이 결제하는 본인을 보았다. 서로에 대한 이름이나 겨우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을에 부산의 바닷바람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들은 나흘간의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하였고, 열편의 영화를 고심하고 선별했다. 열편이라니, 지수는 사실 영화보다는 책에 더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화를 충분히 존중하고 섬세하게 감상할 줄은 알았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우주만큼, 아니 우주의 발끝이나 따라갈 정도나 겨우 된다 해도 많이 쳐준 셈일 것이다. 그렇지만 다정한 우주의 영화제 찬양을 스쳐 지나가듯 이라도 들어본 이는 감히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보면 사랑이 샘솟기 마련이고, 그 샘솟은 사랑의 목적지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위험하다. 지수는 위험에 들어섰고, 인지했지만, 계속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아니 결정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피동으로 표현해야 더 맞는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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