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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l 03. 2023

시계태엽 오렌지

허영의 그림자 속 예술의 향유 - 06. 폭력의 미학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인이 하는 생각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토록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무엇이 되었든 명료해질수록, 더 선명하게 묘사할수록 경이로움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주였다. 설사 그 무엇이 살인, 강간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일지여도 어떤 선명한 설명을 보여주는 것은 또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멋들어지게 흘러나올 때, 세찬 소나기가 쏟아질 때, 너무도 아름다운 춤사위로 완전한 살인을 저지른다면 그를 어찌 예술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그였다. 놀랍지도 않을 만큼 본인 자신도 우주는 꽤 그러한 정돈된 형용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정리된 묘사는 곧 완전함이었고 완전한 것은 미학이었다. 우주는 언제나 세상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게 쪼개어서 바라보았다. 모든 개념도 형체도 아주 세심하게 나누어서 설명해보지 않으면 모호하게 퉁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일까. 모든 건 정돈되어야 했고, 이는 공간에도 생각에도 통용되었다.


 어느 하루는 오래된 니트를 꺼내 입고 새로 산 바지와 코디를 해보았는데, 선반에 놓인 반지와 목걸이가 야무지게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우주는 꽤나 흡족한 표정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완벽한 아름다움은 절대 우연이라고 볼 수 없어, 라며 고즈넉한 오래된 니트의 향기와 보풀과 그와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공장에서 갓 나온 모직물의 향과 빳빳함은 완전하게 계산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수는 우연에 더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인지라 썩 만족스러운 말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가지지 못한 명료함을 가진 우주가 아주 꼬릿 하게 질투가 났다.


 우주는 항상 지수의 말을 정리해 주었다. 그런 정돈된 생각들은 지수가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더욱 좋은 거름이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가치들이 이토록 현란한 색상의 춤추는 빛깔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스스로를 더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수는 유독 끔찍한 생각을 하기를 즐겼다. 너를 꼭꼭 씹어먹고 잘게 잘게 찢어서 삼켜버리고 싶어. 꾹꾹 눌러 담은 캐리어의 옷들 마냥, 꾹꾹 극단적인 상상을 하곤 하는 지수였다. 그의 말과 생각을 잘 포장해 준 우주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끝없는 질투심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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