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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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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Dec 01. 2019

책향

2019.11.26 아일랜드 첫째 날

후각은 생각보다 예민한 감각이다. 향수를 뿌리는 이유도 같다. 비염 때문에 향수의 매력을 크게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자꾸만 나를 잡아끄는 향이 있었다. 바로, 종이 냄새였다. 아일랜드는 꽤 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퀘트 등 유명한 작가들의 나라다. 나라가 그래서인지, 내가 그래서인지 여느때보다 자꾸 서점에 끌렸다. 서점이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도 서점을 가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서점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가 좋다.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불빛, 적당한 소음 그리고 책 냄새. 다른 나라의 서점은 어떨지 궁금했다. 어떤 책이 유명한지, 한국 책은 있는지. 종이의 재질이 좀 더 거칠어서 그런지, 유럽의 서점은 종이 향이 특히 강하다.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여행 책을 읽으며, 무엇을 봐야 할지 다시 한번 정리했다. 다음번에도 꼭 그 나라에서 그 나라를 소개한 책을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 다닐수록, 종이 냄새가 강해졌다. 트리니티 대학교에 있는 Long room에서 그 향이 가장 극대화되었다. 계단을 올라갈 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긴 방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곳은 종이 냄새로 꽉 차 있었다.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짙고, 오래된 향이었다.  낡은 책이 지닌 세월의 무게만큼, 책을 담고 있는 공간도 깊이가 느껴졌다. 고개를 젖히면, 2층까지도 가득 책으로 차 있었다. 이 곳에서 더 이상 책을 빌려 볼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켈스의 서보다 long room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혼자 카페에서 ‘언어의 온도’를 읽다가, 이런 책을 나중에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을 짤막하게 하나의 에피소드로 엮어, 글을 쓰고 싶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전, 율리시스 서점에 들렀다. 유명한 작가들의 초판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한다. 사무엘 베퀘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으면 살까 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먼지가 쌓인, 책장이 다 낡아빠진 책들의 값어치는 어마어마했다. 책도 와인처럼, 숙성시키면 그 값어치가 올라가는 신기한 재화다. 책에 내재되어 있던 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며, 밖으로 표출된다. 새 책은 가질 수 없는, 오래된 책만의 매력이 있다. 세련된 향은 아니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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