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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May 01. 2020

시작의 꾸준함, 꾸준함의 시작

생각 1) 나는 꾸준한 사람일까?


5월 1일, 노트의 첫 장이 펼쳐졌다.
항상 나는 시작을 꾸준히 해왔지만, 시작의 흔적도 꾸준히 없애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꾸준함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매월 1일, 노트의 첫 페이지와도 같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선반을 정리하다 보면, 앞에 두 세장만 예쁜 글씨로 적힌 노트, 분명 새 페이지로 시작되는데 헐거운 노트가 있다. 분명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 노트를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뜯었다. 그리고는 새 노트인 것처럼 다시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글씨가 갈수록 못생겨져서, 맨 앞부분에 공들이다가 힘이 빠져서, 공부를 안 해서. 그만큼 내게는 시작도 중요했지만, 빼곡히 쌓인다는 느낌도 중요했다. 돌아온 오늘, 한 달의 첫날은 찢지 않아도 새 노트인 셈이니 시작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주로 내 인생 노트 페이지의 단위는 '하루'다. 한 번 하루가 망가지면, 속절없이 무너지곤 한다. '아, 내일부터 다시.' 시작의 단위인 '하루'는 짧게 느껴지기도 하고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겨우' 하루 정도를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다행이기도 하면서, '하루씩이나' 찢어버린다는 게 무척 아쉽기도 하니까 말이다. 1시간이라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면서도, 한두 시간의 꾸준함을 시작점으로부터의 멋있는 완주라고 하기에는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글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동안 글을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꾸준함이 유지되지 않으면, 노트를 찢어버리는 것처럼 글을 지워버렸다. 나의 '꾸준하지 못함'이 어딘가에 증명되는 것 같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사람인 척, 꾸준한 사람인 척하며 스스로를 밖에 내보이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1주일의 꾸준한 흔적도, 3개월의 꾸준한 흔적도 지우고, 부정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돌이켜 보면, 글쓰기에 있어서 꾸준했던 것은 '시작'이라는 행위 하나였다. 나는 매일매일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 번의 시작 중 하나라도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면'이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어쩌면 완벽한 시작점에 서 있는 것보다, 부족한 과정을 거치며 도달하는 마무리가 더 값진 것이 아닐까.


 달력의 장을 넘기며, 다시 한번 1일을 맞이한 나는 고민이 들었다.


'자꾸만 시작점에  있는 나는 꾸준하지 않은 사람인가?'


 그런데 여태까지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역설적이게도 꾸준함은 재능이 없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재능에 가까웠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꾸준히 해온 것들이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중 하나가 '시작'이었다. 꾸준히 다짐했고, 꾸준히 시작했다. 비록 때때로 시작의 끝을 맺지는 못했지만, 항상 말로만 시작하지 않고 행동했다. '시작은 서툴 수 있고, 꾸준함은 느슨할 수 있다'라고 인정했더라면, 그때의 행동들이 지금까지 이어졌을 텐데.
 
 지난날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1일을 좋은 구실로 삼아 꾸준함이라는 것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느슨한 꾸준함과 서툰 시작, 이전보다 부담감이 덜하다. 대신, 이번에는 시작점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의미 있을 때도 있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하나의 제대로 된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으로 완벽하지 않은 꾸준함을 가리지 않고,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시작점에서 여러 개의 꾸준함을 쭉 엮어나가려고 한다. 꾸준함과 꾸준함 사이의 공백을 인정하고 시작점을 뒤로한 채, 끝까지 달려봐야겠다. 가까이서 보면 점과 점 사이에 불과하겠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시작점에서 쭉 이어진 하나의 선처럼 보일 테니까 말이다. 들쭉날쭉한 여러 개의 선보다는 살짝살짝 비어 있는 한 개의 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번 시작의 목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온전한 선을 그릴 수 있을 테니.

오늘부터 꾸준함을 시작해본다. 이제부터 꾸준함은 시작을 꾸미기 위한 단어가 아니라, 시작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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