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il Jul 06. 2020

나의 첫 상복(喪服)

할아버지 기억하기(1)

식탁 위에는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금샘아,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전화해.'
 

 이게 무슨 일이지? 종이 한 장으로는 와 닿지 않는 소식이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오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빈소가 마련되면 연락할 테니, 일단 밥을 먹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올해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할아버지였다.
 

밥을 먹는 게 맞나? TV를 보는 게 맞나? 뭔가 TV를 보면서 밥을 먹는 건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슬픈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웃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후, 평소와 달리 미적거리지 않고 바로 펜을 잡았다. 침대에 누워있거나, 핸드폰을 하는 것보다, 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태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연락이 다시 올 때까지, 문제 풀이에 몰입하기로 했다.


 기다리던 벨소리가 울렸고, 옷을 입었다. 검정 양말을 신는 게 맞나, 네이버를 찾았다. 엄마는 어차피 상복을 입을 것이니, 옷은 아무렇게나 입어도 된다고 했다. 하룻밤 나기에 필요한 짐까지 바리바리 싸서 지하철을 탔다.


 노래를 들어도 되나, 영상을 봐도 되나. 지금 이 상황에 적합한 태도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별다른 매뉴얼이 없었다. 빈소로 향하는 길은 평소 약속이 있을 때와 같은 길이었고, 길을 찾는 방법도 다른 곳을 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빈소로 가는 길도 여느 길과 다름없었다. 뭔가 다급하거나, 슬프거나, 특별할 줄 알았는데 같았다. '이방인'의 주인공이 자꾸만 떠올랐다.


 빈소에 도착했을 때,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오랜만인 언니를 보고 나는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고민했다. 그래서 너무 환하게는 아니지만, 적당히 반가움을 표시했다. 눈시울이 붉은 고모를 보고 나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고모는 꽤 덤덤했지만,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고모를 제외한 아빠, 큰아빠는 평상시와 같았다. 그래서 가장 슬퍼 보이는 고모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상복을 입었다. 장례식은 여러 번 갔었지만, 상복을 입은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겠지. 장례식에서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들이, 할아버지의 죽음이 진짜임을 알려주는 표지 같았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내게 여러 개의 표지가 쌓여, 나중에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진실로 와 닿게 되는 것이었다. 첫날의 표지는, 상복, 고모의 눈시울, 작은할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고모는 아빠를, 작은할아버지는 형을,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을 잃었다.


 첫날의 빈소는 시끌벅적했다. 많은 손님들이 빈소를 찾아주었고, 나는 부의금을 받는 곳에서 자리를 지켰다. 아빠를 비롯한 상주들은 빈소와 접객실을 정신없이 오갔다. 상주들은 슬퍼할 틈도 없이 바빴다. 비교적 한가한 나는 사촌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언니는 올해 상복을 두 번이나 입었다. 언니는 이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내일 입관식 때 손수건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손수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이 상황에서의 이상한 느낌을 덜어주었다. 큰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한데, 그 누구도 내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이상했다. 엄마는 전화로 챙겨 올 게 없다고 했고, 실제로도 나는 자리를 지키고 명절 때처럼 오랜만에 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 되었다. 이처럼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든 행동들이 의문스러웠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준비할 것이 생긴 것이었다. 준비물의 정확한 용도는 감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