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대형 사고를 당하고 수술과 입원, 퇴원 후 지금까지 나의 일상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제약된 공간, 제약된 행동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유보해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상처의 회복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니 급하다고 무턱대고 달려들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운동이 문제였다. 애당초 내 팔만 유일하게, 심하게 부러진 데에는 근육 부족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근력이 없어 사고 전에는 헬스장에 출근하듯 가서 걷기 운동이라도 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만만한 운동 기구를 골라 상반신 운동을 하기도 했다. 건강 검진을 하면 특히 상반신 근육이 많이 부족하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어깨를 지탱하는 근육이 부족하다 보니 평소에도 자주 아프고 힘이 없었다. 그야말로 덩치만 컸지 실속은 없는 몸이었다.
병원에 있다 보면 며칠만 있어도 근육이 빠져나간다. 짬짬이 병실과 복도를 왔다 갔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움직임이다. 근육이 없어 어깨 질환이나 통증이 생기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 더욱 근육이 빠지고, 근력이 없으니 더욱 움직이지 않게 되고 악순환이 되기 쉬웠다.
다친 부위가 다리가 아니어서 진통제를 맞으며 견뎠던 사나흘을 제외하고는 바로 병원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작했다. 자주 하지는 못하고 하루에 두, 세 번 정도 식후에 소화도 시킬 겸 왔다 갔다 했다. 그래보았자 몇 분이면 끝나는 산책에 불과했지만 그렇게라도 움직여야 했다.
퇴원을 했지만 소독과 물리치료, 경과보고를 위해 계속 통원을 해야 했다. 요즘에는 날이 꽤 풀려서 집 주변을 다닐만하지만 팔과 어깨에 거대한 보호대를 하고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삼한사온의 늦겨울 날씨와 돌연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외투조차 제대로 여밀 수 없고 균형잡기도 어려웠다.
팔의 붕대를 푼다고 해도 팔은 제대로 올라가지 않을 성싶다. 당분간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무리하는 자충수를 두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을 혹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은가. '참자'를 속으로 외치고 가만히 생각했다.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거창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
평소에는 마음 내킬 때에만 했던 것. '계단 오르기'가 떠올랐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사실 처음 해보는 루틴은 아니지만 매일 하지는 않았다. 헬스장에 다녀왔다는 핑계로, 혹은 짐이 많아서 외출할 때만 간헐적으로 했던 활동. 게다가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자체도 시간이 꽤 걸렸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한 손으로 서커스 하듯 몸을 뒤틀며 옷을 입는다. 한 손으로 먼저, 그다음 아픈 팔 쪽으로 옷이 안 입혀져 휘돌리다가 삐끗하며 전기 자극을 받는 듯한 통증을 각오해야 한다. 건물 안이지만 집 밖은 영하를 오가는 찬 공기의 회색 공간이다. 콧물이 줄줄 흐르니 휴지 몇 장을 주머니에 넣고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진정시키지만 한 손으로 묶을 수가 없다.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이웃을 스칠 것도 각오해야 한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서로 인사하지도 못하는 거주민이다.
겨우 준비를 마치고 생각보다 늦게 집을 나선다. 계단 비상구로 향한다. 뭐든지 나가기까지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일단 나가면 하게 된다. 누가 볼세라 얼른 비상구로 나간다.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 계단도 서두르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장소니까. 우선 1층으로 내려간다. 그날의 공기를 간접적으로 느끼며 워밍업이라 여기며 내려가기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계단은 계단이지'라며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 문에서 계단까지 나오는데 광장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은근히 떨릴 때가 있다.
나가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그냥 적절한 홈트 영상을 틀어놓고 가벼운 발 운동만 할까도 했지만 그러면 점점 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오전보다는 어느 정도 기온이 오른 오후나 초저녁 시간에 나가 계단과 만나는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대개 5분에서 10분 내외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초반에는 내려가서 1층부터 집이 위치한 층까지만 올라갔었는데 어느 순간 올라가는 계단 수를 늘려가겠다 싶었다. 1층, 2층, 3층, 집이 있는 층을 지나 15층, 20층까지 올라갔다. 컨디션이 좋거나 조금 더 올라가야겠다 싶은 날에는 25층에 30층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욕심내지 않고 평균 20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가 사는 층까지 내려온다. 시작은 매번 힘들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다. '그래도 오늘 움직였네'하며 스스로 격려도 잊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 익숙해지면 지루해진다. 지루해지면 게을러지거나 흐지부지 안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심리가 들 찰나 단순한 계단 오르고 내리기를 상반신이 안되면 하반신이라도 근육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걷는다. 집을 나서기 전에 지루함과 단순함을 달랠 겸 오디오북을 듣는다. 짧은 시간에도 딴생각이 들어 집중력이 흐려지곤 하지만 "Better than nothing"이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한 달 넘게 계단을 오르내린다. 어느 순간부터 내려갈 때 계단과 층계참 사이로 놓인 사물과 공간의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제는 어느 층에서 학생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가방이 팽개쳐 있었다. 부피감으로 보아 꽤 크고 작은 액세서리도 달려있는 명품 가방처럼 보였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누가, 어떤 학생이 이 좋은 가방을 팽개쳤을까. 급한 일이 있어서 우선 내려놓고 집으로 달려갔나. 친구가 놀러 왔다가 계단에 놓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잊고 가버렸나. 아니면 공부가 힘들어 바쁜 일정을 마치고 오는 길에 홧김에 내팽개친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펴지만 감히 건들 생각은 하지 못한다. '가방 주인이 조만간 되찾으러 오겠지' 생각하며 다음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다음 날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문제의 가방이 그대로 있다. 누군가 벽 한쪽으로 세워둔 듯하다. 어디 신고하기도 애매하니 그렇게 놓아둔 듯한데 그럼에도 주인 없이 놓여 있는 가방이 애처로워 보인다. 단순 실수보다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생각보다 심각한 사연이.
또 다른 층에서는 거대한 화분과 식물이 한편에 놓여 있었다. 원래 계단에는 개인 물건을 놓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회색빛으로 삭막한 계단의 이어짐이 중간에 만나는 식물의 군상이 긴장감을 풀어주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만난 푸른 잎의 친구들, 내일도 만나겠지?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네게 된다. '이제 많이 추운 날은 다 지나갔을 거야. 봄이 올 테니 너희들도 조금만 참아. 우리 함께 기지개를 켜는 날이 오겠지?'라고.
때로는 내려가며, 때로는 올라가며 숨이 찰 때가 있다. 왼쪽 무릎이 아파질 때면 괜히 그 핑계로 그만하고 올라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까.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인데 나의 마음은 계단 하나 오를 때마다 변덕스럽게 출렁인다.
이 팻말이 늘 붙어 있는 층이 있다. 그것도 두 개나 붙여 놓았다. 처음에는 웃기기도 하고 이 메모를 붙여놓은 이웃의 마음이 되어 소심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누군가 실수든 무심함이든 반려견의 배변 활동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한 달, 아니 일 년 내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이웃 간에 지켜야 하는 에티켓은 정말 중요함을 깨닫곤 한다.
거의 목적지를 앞둔 이곳을 오를 때마다 기쁘기도 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5층만 더 올라갈까, 아니 그냥 평소처럼 20층 채우고 내려가자. 과욕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 오늘 운동 다하고 내일 자리에 누워 끙끙대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치기 전에는 남편과 늘 함께 헬스장에 갔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막상 혼자 헬스장에 나서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함께 가지 못해서 마음속으로 늘 아쉽다. 집을 나서다 말고 내 눈빛에서 마음을 읽는다.
"같이 산책이나 다녀올까?"
나는 못 이기는 척 옷을 걸쳐 입고 함께 길을 나선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남편은 헬스장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기분도 풀어주고 자신의 체력도 관리하는 남편 덕에 나는 다시 계단을 오를 힘을 얻는다. 두 번째 계단 오르기. 무서운 밤길, 계단이 이제는 무섭지만은 않다. 가끔 교차하며 마주치는 이웃이 있으면 옆을 비켜주며 속으로 '파이팅'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무생물이지만 친구 삼아 오늘도 나는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