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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추고 세상을 읽다

by 애니마리아


사고, 병원, 갑자기 느려진 나의 시간에 갇혀 지내다 보니 세상이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상대성 이론에 빠진 것처럼 세상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낑낑대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해 내지 못한 할 일과 더딘 결과물에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과 서로의 하루를 점검하며 토닥이는 말 끝에 세상사 하나를 끄집어낸다.



"공군기 폭탄 사고로 난리 난 거 알아?"


"으잉? 정말? 우리나라야?"



뉴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일 쏟아진다. 개인의 관심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소식으로 가득하지만 독자와 청자의 시선을 끌어야 해서 그런지 긍정적이고 따뜻한 내용보다는 사고, 충격, 다툼, 범죄와 같은 부정적 내용이 우선시 되는 듯하다.



쌓인 신문을 펼쳐 들고 세상을 돌아보았다. 인터넷에 기반한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지만 그만큼 보여주는 대로 보아야 하는 수동적인 정보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또한 내가 굳이 종이로 된 신문을 조금이라도 훑어보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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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HERALD MAR. 4TH



요즘 인터넷 포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틀면 정치, 경제, 국제 면에서 늘 미국의 새 정부와 타국 간의 관세, 갈등과 같은 기사가 자주 나온다. 이를 반영하여 약간의 풍자와 뼈가 담긴 듯한 신문 기사가 시선을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Has 'America First' has become America alone?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고립주의가 된 것인가?) 짧은 구호 속에 담긴 속뜻이 조금씩 다르면서도 여러 가지를 담고 있어 의미 있는 제목 같다. 미국인 입장에서 자국을 최우선시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나친 국수주의가 아니라면 조국을 가장 사랑하고 중요시하는 태도는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취할 수 있는 태도일 테니.



특히 선택을 해야 하는 국가 위기 사태나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최후의 보루는 바로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문에 있듯 자국 보호가 너무 과하다 보면 타국에 피해를 주거나 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 혼자가 되기도 한다. 아군보다는 적군이 많아지고 기존에 우호국, 아군이었던 나라들도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충돌이 끊이지 않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계가 굳건할 것 같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 사이가 삐거덕대는 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복관세니 욕설이니 하며 캐나다, 미국, 멕시코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정상과 미국의 새 대통령의 이례적인 회담이 주었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싸움을 목격하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저 남일이라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나라도 언제 어떤 일을 직면할지 안심할 수 없어서 그럴까. 내게 어떤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지만 결국 일어나는 사고는 막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만 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현상 앞에서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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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HERALD MAR. 7TH






사고 다음 날의 신문 헤드라인은 역시 폭탄 사고로 장식되었다. 오늘 아침에 받은 신문이지만 전날에 작성되어 인쇄되었을 테니 제목의 '15명 부상'은 어느새 17명으로 늘어나(글 작성 시점 기준) 있었다. 관련 기사를 더 찾아보니 공군기 1호와 2호가 똑같이 실수로 입력을 잘 못해서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하는데 의혹이 많은가 보다. 사망자는 없지만 다친 사람이 꽤 많았고 더 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알고 보니 폭탄을 8개나 떨어뜨린 장소는 성당과 상점, 집이 모여있는 곳이었고 외국인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까운 곳에는 초등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원인이든 밝혀져야겠지만 전쟁터도 아닌데 날벼락을 맞듯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과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 저려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군대에 있어서인지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느 편에 서기가 더욱 불편하고 예민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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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HERALD MAR. 7TH



그러다 조금은 색다른 기사에 눈길이 갔다. 독서 및 책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독특한 이력의 작가 한 분이 있었다. Alan Page(앨런 페이지)라는 미국인으로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지만 꽤 유명해 보였다. 기사를 훑어보고 검색을 해보니 크게 세 가지 경력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5년 생의 앨런 페이지는 미식축구 스타였다. 운동선수는 생명력이 길지 않아서인지 전성기를 보내고 22세 정도 되던 해에 대학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았다고 한다. 33세에는 로스쿨에 가서 법조인이 되었고 48세부터 70세 정년까지 부장판사로 일했다. 수비수로는 최초로 MVP를 받았고 2018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다.



내가 어릴 적 부끄럽지만, 운동선수는 대개 지적이지 않다는 편견이 있었다.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운동과 체력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고 실제로 수업에 충실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 유독 그런 환경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 후에 외국, 특히 미국에서는 운동선수도 일반 학생과 같은 성적을 유지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도움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그저 자유분방할 것만 같은 그들의 문화 속에서도 꼭 지키려는 원칙과 가치가 부러웠고 우리도 배울만하다고 느꼈다.



기사와 함께 나온 사진은 판사직을 그만두고 손녀뻘 되는 아이와 함께 요리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전도유망한 선수, 엄격한 판사를 거쳐 동심으로 돌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는 한 사람의 삶과 태도가 참으로 멋져 보였다. 사고와 갈등으로 어두워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독불장군이 되어 외로워질 수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그런가 하면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노력하고 타인과 어울리고 공헌하는 삶도 있다.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삶보다는 보는 것 자체,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배움이 있고 겸손해지는 삶을 많이 접하고 싶다. 몸의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지혜가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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