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를 만난다면

by 애니마리아

일요일 오후 길을 나서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였다. 눈이었다면 그냥 모자를 쓰고 갔겠지만 춥고 비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귀찮지만 우산을 가져오는 게 나을 듯했다.


남편은 일 층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 우산을 가지고 오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잠시 외출 자체를 취소하고 싶었다. 버스로 두 정거장을 걸어야 했고 예상치 못한 겨울비와의 동행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남편과 시간 보내기였고 산책 겸 걷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우산 꽂이에서 우산 한 개를 가져갈까, 작은 우산 두 개를 가져갈까 또 다른 문제로 망설였다. 큰 우산을 가져가면 함께 쓰면 되니까 한 개로 족하지만 길이 질퍽할 테고 오는 길에 장도 봐야 하니 번거로울 것 같았다. 결국 작은 우산 두 개를 가져갔지만 우선은 하나만 펴고 하나는 손에 들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를 향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저 앞에 횡단보도가 보이고 세 명 정도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도 그 무리를 따라잡아 함께 기다리게 되었는데 세 분 모두 갑자기 비를 만났는지 우산을 채 준비하지 못하고 비를 맞고 있었다. 특히 한 분은 허리가 많이 굽어 있는 할머니셨는데 모자도 쓰지 않고 비를 온전히 다 맞고 계셨다. 처음에는 그분들이 서로 지인인 줄 알았지만 신호가 바뀌자 두 분이 먼저 뛰다시피 걸어갔다. 가뜩이나 겨울의 한파 때문에 힘든데 몸도 가녀린 할머니께서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딱해 보였다. 나는 그저 속으로 '모자라도 쓰셔야 할 텐데. 너무 추우시겠다'라며 안타까운 혼잣말을 되뇌기만 했다.


바로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저 할머님께 우산 드리자!"

"응? 아, 그래. 그러자. 우린 하나 있으니까."

우리는 허둥지둥 할머니께 다가가서 우산 쓰고 가시라고, 자동 우산이니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고 조심해서 가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셨고 환한 미소를 보내셨다. 인사는 우리 둘 다 받았지만 사실 남편의 빠른 판단과 실천이 아니었다면 나는 찰나의 감정만 지닌 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나는 남편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빨리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이웃에게 친절하기, 선행 실천하기' 등을 열심히 적고 돌아서서 나만 생각한 듯해서다. 문득 고해성사에 대해 신부님이 강론 때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흔히 누구를 해코지하고 피해를 주는 죄, 눈에 띄는 죄를 반성하고 고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선행을 베풀 수 있는데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도 고해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나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이타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내가 좀 더 불편하고 시간을 써야 하며 그것이 귀찮아서 지나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잠시 후 "아까, 할머니께 우산을 드린 일, 정말 잘 한 것 같아."라며 말하는 남편의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였다. 진심 어린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연예를 하면 착해진다고 하는데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여전한 그의 모습에서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

선행의 이유가 단순히 도덕적 의무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을 때 나 자신 또한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게 양심이 소리든 종교든 가치관이든 무엇이든 간에 '사람의 정'을 나누는 순간만큼은 기적과 행운이 미소 짓지 않을까.


불필요한 재화를 나누는 것,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늘 친절을 베풀 수는 없지만 나도 언젠가 겨울비를 만나지 않겠는가. 그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친절이 망설여질 때 '겨울비'를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의 환한 미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