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lot and the Little Prince
<The Pilot and the Little Prince>
* Title: <The Pilot and the Little Prince 번역서: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
* Author: PETER SIS
* PRINTED IN: 2014
* Publisher: FRNACES FORTER BOOKS FARRAR STRAUS GIROUX
세 번째로 다룰 피터 시스의 작품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삶(THE LIFE OF ANTOINE DE SAINT-EXUPERY)을 다룬 <The Pilot and the Little Prince 번역서: 하늘을 나는 어린 왕자>이다. 1900년에 태어나 1944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조종사이자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지 80년이 지났다. 이 책은 70주년 되던 해인 2014년 위인을 기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쓰고 발간한 작품이면서 자유와 꿈을 향해 날아간 한 인간에 대한 전기 동화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작가의 생애가 어땠고 어떤 배경에서 그렇게 멋진 고전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역사적 고증도 철저히 거친 후 연도 하나하나에 맞는 사건을 배열하였다. 시스의 스타일이 이 작품에도 예외 없이 드러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하는 시점에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시기는 마침 많은 것들이 발명되던 때였다. 라이트(Wright) 형제의 비행기 발명 시기도 마침 1903년으로 이후 비행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비교적 풍족하고 유서 깊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모험심 강하고 꿈 많은 아이로 자라났다. 비행은 그의 이러한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부채질하는 가장 멋진 발명품으로 다가왔다. 비행의 중심지로 뜨고 있던 프랑스에서 생텍쥐페리는 12살 때 이미 자신이 만든 비행 기기로 날기를 시도하였다. 가족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행기와 최대한 가까이 있고 싶어서 군대에 지원했고 결국 비행기로 우편을 배달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지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비행 업무 초기 단계라 고장과 추락 등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는 활동이었다. 극한의 환경을 경험하는 것은 조종사의 운명이나 마차가지였다. 그가 당한 추락 사고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체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식량과 물이 거의 없이 4일 동안 생존해야 하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그는 작품에 이러한 경험을 반영하였다. 우리가 오늘날 <어린 왕자>에서 조난당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는 사막 장면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마치 프랑스 왕의 계보를 보듯 세밀하고 귀엽게 표현된 작품의 시작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인 1897년부터 시작한다. 조상 중에 성직자, 귀족, 기사, 학자, 음악가 등 화려한 가계도가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도는 듯한 형상의 자세한 그림이 흥미를 이끌어낸다. 결코 조용하지 않았던 어린 그를 보고 친척과 어머니의 상반된 평가를 나타낸 만화적 기법은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 애는 너무 거칠구나!”
“정말 천사 같은 아이인걸요.”(본문 중에서)
세세한 설명과 연도, 그림이 친절하고 지적 욕구를 충족해 줄 수도 있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반대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의 생애나 비행 과정, 경로를 대표하는 그림과 설명이 한 해에 하나가 아니라 네다섯 가지가 될 정도로 큰 사건들이 복잡하고 빽빽한 백과사전처럼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급 단계 빙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정보 판처럼 꽉 채운 그림과 작은 글씨는 글밥 위주의 아동서 못지않게 긴 시간을 요하기도 한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내용 대부분이 고래의 습성, 종료, 전문 지식이 수백 쪽이며 흔히 알려진 모비딕과 선장의 악연 이야기는 극히 일부라고 한다. 일생이 거의 비행기와 비행에 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시스의 방대한 조사와 연구, 작업 시간과 정교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비행기의 구조, 관련 기능 설명, 지도, 아프리카 근무지 비행경로 등 한 번의 통독으로 파악하기 힘든 구조가 이 책의 매력이자 복병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작품을 읽다 보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거나 거치지 않고 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조국 프랑스가 독일의 지배와 억압 속에서는 비행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으로 잠시 망명을 간 사이 비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 왕자>(1942~43)와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프랑스 발간은 전쟁이 끝나고 1946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하나 생텍쥐페리는 이미 그전에 비행 중에 실종(추락사로 추정) 되고 말았다.
He thought back to his childhood, the places he had seen, the things he had done, adn the people he had met. He bought a small box of watercolor paints and started working on an illustrated book about a boy with golden hair.
from the book, <The Pilot and the Little Prince>
피터 시스의 그림 스타일을 보다 보면 뭐라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인상파 화가들의 점묘법(pointillism) 같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돌 하나하나,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 벽돌 하나하나 세세히 그린듯하지만 점의 형태만 있지는 않다. 점, 실선, 짧은 선, 긴 선, 굵은 선, 가느다란 선이 명암을 이루고 원근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원근법을 무시한 듯 정교한 터치가 균형 있게 펼쳐진다. 아방가르드 스타일의 패턴이나 입체인가 싶다가도 고대나 중세의 원시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자세히 한 곳을 응시하면 나무 하나하나가 대형 개미군단처럼 보여 세기를 포기하다가도 조금만 시선을 밖으로 끌고 나오면 생명체가 보인다. 전체의 그림이 혹은 그 일부가 나를 쳐다보는 눈이 빛나면서도 끔찍하지가 않다.
때로는 그의 스타일과 다른 그림 스타일의 실험정신이 보이면서도 기존 패턴의 규칙성이 합해져 전쟁의 끔찍함 속에서 예술처럼 피어오르는 연기와 피가 동시에 느껴지기도 하다. 환상과 현실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예술 집합체가 또 하나의 액자 구성이라는 입체성이 느껴진다. 붉은 이미지 뒤에 오는 새파란 이미지의 바다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 잔잔하고 아름다운 윤슬이 담겨 있다. 그 자체로 내가 조종사가 되고, 어린 왕자가 되며, 생텍쥐페리가 된 듯한 착각을 느낄 수도 있다. 드물지만 글자 하나 없는 페이지를 만나다 보면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커다란 예술품을 대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가격의 부담이 크기도 했다. 유명하고 오래된 작품이라고 늘 온라인 서점에 비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서는 특히 일반 종이책도 있지만 두꺼운 표지의 작품이 함께 출판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이 더 올라간다. 절판이 되거나 중고만 있을 때도 있다. 이 책을 중고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도 전에 새 책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판매자의 편지가 있었다. 내가 신청한 책의 상태는 원래 중고 중에서도 ‘최상’이었다. 하지만 편지에는 ‘중급으로 판단되어 2000원을 환불해 드립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손글씨가 있었다. 현금 2000원과 함께. 판매자의 양심과 책에 대한 자부심, 배려와 예의가 함께 들어있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펴 본다. 아직도 그 편지와 꺼내지 않은 2000원이 있다. 이 책에 대한 감동은 몇 배가 되었고 다시 펼쳐 보는 힘이 되었으며 깊은 독서와 애정으로 치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