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라마를 보다

by 애니마리아

'드라마를 한번 볼까'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보면 웬만하면 끝까지 보려고 한다. 사실 재미있고 대중의 관심으로 검증된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아 웬만하면 끝까지 보는 편이다. 단 한 편만 보고 ‘이건 아닌데, 생각보다 너무 아닌데’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남편이 나보다 드라마를 더 보기도 하지만 주변의 많은 지인이 추천하는 드라마 위주로 본다는 기준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침 내가 즐겨보는 ‘최강 야구’도 아직 새 시즌 전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미스터 트롯’도 경연이 다 끝났다. 아직 움직임에 제약이 있기에 산책만으로는 주말을 보내기 아쉬워 괜찮은 드라마를 함께 보기로 했다. 보통 십중팔구는 남편이 내게 특정 드라마를 보자고 권해서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함께 보기를 권했다. 평소에도 나와 뭔가 함께 하려고 신경 쓰는 남편과 주말에 뭔가 함께 하면서 대화하는 즐거움은 내게 비타민과 같은 것이기에. 요즘 인터넷을 열면 AI가 관련 소식과 감상을 열심히 어필한 덕에 ‘오래간만에 드라마 한번 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몇몇 내게 소중한 지인의 감상도 한몫했다.


드라마의 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깊었다. ‘해리 포터’의 나라 영국만 해도 소설보다 드라마가 먼저 등장하고 성행했다. 흔히 알려진 셰익스피어도 16세기와 17세가 사이의 르네상스 시대 사람이다. 초기 영국 드라마는 그 이전 중세 시대(10세기)에 이미 연극 공연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최초의 영국 소설로 거론되는 작품(‘로빈슨 크루소’,‘파멜라’)만 보아도 18세기 근대에 와서야 등장하였다. 이번 학기에 영국 소설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더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의 대화에서조차 드라마는 종종 언급된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 ‘드라마 쓰네’, ‘반전 드라마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야’, ‘막장 드라마야’와 같은 표현을 한다. 그런가 하면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라 칭하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주연급 인물, 조연급 인생’하며 비유적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고 보니 드라마가 은연중에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참 폭넓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를 즐겨 보든 보지 않든 그 힘을 인정하고 드라마의 힘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영향권 안에 포함되어 있다. 취미 속에, 언어 속에, 의식과 무의식 속에.


‘폭싹 속았수다’는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사투리 같으면서도 외국어처럼 들리는 제주어의 특성으로 보나 연상되는 말과 전혀 다른 뜻으로 보나 독특한 멋이 있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폭싹 늙었다가 아니고 속았다고? 사기당했다는 뜻인가. 뭔가 안 맞는 것 같은 조합에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를 보려고 마음먹기 전의 생각이니 어찌 보면 나와 같은 비주류 시청자를 겨냥하기 딱 좋은 제목 전략일 수도 있겠다. 제목의 중요성은 책이든, 영화나 드라마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외양과 성격이 다 다르듯 반응도 다 다르다. 배경과 경험이 다르니 반응이 다른 건 당연하다. 어떤 분은 우리 부부와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이 드라마를 보고 내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황보검 씨’가 드라마에 나온 것 같다면서.(남편은 황 씨다) 그 한마디에 남자 주인공의 성격이 보였다. 다정하고 성실한 남자로 나오는구나. 또 다른 분은 ‘자식이고 뭐고 다른 거 다 필요 없어요. 부부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의지하며 사는 게 최고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바닷가가 고향인 관계로 ‘내 어린 시절이 보였어요. 결혼 후에 나의 모습도 많이 보여서 많이 울컥했어요’라고 드라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공감하며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을 볼 것이다. 완전히 동일하진 않지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울고 웃을 것이다. 선에 응원하고 악에 화를 내겠지만 때로는 자신도 악에 속한 적이 있음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초반 어느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여자 주인공 애순이가 셋째 아이를 잃고 정신줄을 놓은 모습, 그 모습에 좌절하는 남자 주인공 관식, 그런 부모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손위 형제들. 울먹이는 나를 보고 안드레아는 다시 유머로 힘차게 장전한 후 씩씩하게 말했다.


“울지 마, 울지 마. 드라마야. 실제가 아니라니까. 애순아, 울지 마라니까!”


순간 툭 하고 터지는 웃음에 눈물이 흐르던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이럴 때 보면 남편이 아니라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줌마 친구 같다. 드라마에 빠져서 현실 속으로 돌아와도 드라마 속 캐릭터에 빙의하여 소꿉놀이를 즐기는 짱구 같기도 하다. 장난기 많고 부산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짱구.


비현실적인 어색함과 그저 낭만적인 동화 같은 부분도 간간이 느껴지지만 아직은 이런저런 평보다는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마, 인간을 보여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