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에게 발레와 패션 중에 뭐가 더 좋은지 물었다. "모델 일은 예술이 아니라서 재미있어. 가끔은 나도 재미를 보고 싶다고."
사샤가 말했다.
"예술이 재미없다는 거야?"
내 질문에 사샤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술이 재미있다고 하는 건 사랑이나 인생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중략) 바보들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Asked if he prefers ballet or fashion, he said, 'Modelling is fun because it's not art. And I like to have fun sometime.'
'Art isn't fun?' I asked, drawing out his laughter.
'Saying art is fun is like saying love is fun. Or life is fun.(omitted)... only real idiot could think that.'
P.237/『 CITY OF NIGHT BIRDS 』
연인에서 약혼까지 결혼을 약속한 나타샤와 사샤. 그토록 그를 사랑하기에 프랑스에 갈 때도 그를 파트너로 데려갔으며 사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엄마와 절연하기까지 했다. 둘 다 최고의 발레리나 대열에 들어섰고 전성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사랑도 성공한 세기의 커플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분전환으로 모델 일과 사교 모임에 다니는 사샤는 나타샤와 예술에 대해 뜬금없이 논쟁 아닌 논쟁을 한 것이다.
흔히 '일은 일이지, 취미가 아니다'라던가 '인생은 늘 신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했어도, 예술의 재미 여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 문장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예술가의 입장에서 예술은 좋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애증의 대상인가 보다.
두 번째 논쟁 주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둘러싼 분쟁'이었다. 사샤는 정치 스캔들로 신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사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으나 본인은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신문에 크림반도를 침략한 러시아를 두둔한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올라갔고 그는 이에 대해 딱히 부인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자신도, 가족도 러시아인며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정신이 깃든 사람이라면서. 나타샤는 역사를 언급하며 이러한 시각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장면과 말이기에 문득 걱정과 궁금증이 일었다. 김주혜 작가는 작년 이맘때쯤 러시아에서 주는 '톨스토이 문학상'수상자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읽다 말고 다시 검색 모드. 확인해 보니,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대상은 이 책이 아니라 그전에 출간한 처녀작, 『 Beasts of a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이었다. 이후에 나온 작품이 『 CITY OF NIGHT BIRDS 』이긴 하다. 러시아의 문학계가 부여한 이 상의 작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미묘한 갈등 장면에 대해 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한국의 독자로서 오히려 눈치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문학과 정치를 분리하여 소신 있게 타국 작가의 작품을 존중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짐작이자 바람이다:)
City of Night Birds
김주혜 2025 Oneworl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