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어떤 장르인가? 사전적으로는 '개인의 생각과 느낌, 경험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시, 소설, 희곡처럼 전통적인 장르에서 오는 진중함이나 서사보다는 가벼운 산책의 느낌 혹은 공감의 글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독서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큰 두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장르.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로 소개되는 『펼치는 책 열리는 꿈』은 어떨까. 소제목과 잔디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의 표지 그림을 보다 보면 논리적인 글 앞에서 느끼는 긴장이 없어서 좋다. 추운 날씨만 아니면 왠지 나도 숲 속이나 공원에서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저자 고해동님은 독서 교육 전문가로 청소년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 한다. 청소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음은 물론 철학, 심리학, 문학 작품을 가까이하며 최근에는 고전 번역도 하는 등 열정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 1부 꿈을 꾸다(장편 동화), 2부 꿈을 묻다(청소년 소설), 3부 꿈을 찾다(청소년 소설), 4부 꿈을 담다(성장 소설)이라는 주제로 저자가 직접 읽고 사유한 책을 소개하고 주제를 다룬다.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과 같은 형식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기사 같은 글처럼 차가운 서평집이 아니다. 인물과 사건, 내용의 쟁점에서 시작하지만 더 나아가 철학, 인생, 세상의 이치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져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깨우침을 주는 인문서이자 따뜻한 상담사와 같다.
처음에는 차례를 보고 읽어보거나 들어본 책의 제목을 발견하고는 반가웠다. 그래봤자 각 부에 한두 권 정도였지만 아는 책은 아는 책대로, 모르거나 처음 접하는 책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내용과 감상이 풍부하게 담겨 있었다. 익숙한 책이지만 가볍게 흘려 넘긴 부분에 대한 단상이나 나와 다른 시선을 따라가는 묵독이 주는 즐거움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본래 로즈(로봇)는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느끼고 배우며, 사랑하는 법을 터득한다. 반면 인간은 감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과학 문명의 발전 속에서 효율과 경쟁에 길들여져 점차 따뜻함을 잃어간다. 이렇게 로봇이 감정을 배우고 인간이 감정을 잃어간다면, 언젠가 인간과 로봇의 역할이 뒤바뀌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1쪽/『펼치는 책 열리는 꿈』의 '공존과 연대의 정신' 중에서
이 책의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무렵, 작은 꼭지의 글마다 내용과 마무리에서 독특하고 통일성 있는 리듬이 느껴졌다. 우선 작품의 상당수에서 '연대, 사랑, 희망, 공감'이라는 표현이 유독 많이 나온다. 『긴긴밤』에서 동물들의 다양한 시선, 공존과 희망이 그려지고(23쪽), 『그리운 메이 아줌마』에서 인간은 사랑에 대한 기억, 남은 이들의 연대 속에서 슬픔을 극복한다(39쪽). 그런가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 가운데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가 강조되기도 한다(51쪽 『사자왕 형제의 모험』 중에서.
1부에서 4부에 이르는 제목과 마무리를 비교해 보면 또 다른 특징이 감지된다. 1부'꿈을 꾸다'에서는 어떤 꿈이든 인간이 인간다움을 깨닫고 간직하거나 실천하면서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의 예시가 나온다. 계획을 세우고 꿈을 꿀 때의 설렘,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아름다운 꿈이었음을 탄식하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을 기원한다, ~하고 싶다, ~을 찾아 나아가기를' ,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등 소망으로 수놓아진 글로 가득하다.
하지만 삶이, 세상이 어찌 희망과 보랏빛 행복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2부 '꿈을 묻다'편에서는 작품 『아몬드』로 시작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선과 악은 왜 존재하는가. 분명히 둘 다 존재하는 거 알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어린 청소년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어렵고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경험, 이해도, 배경에 따라 어른이 읽더라도 각자 떠오르는 생각이나 해답은 같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었음에도 사랑과 감성을 분리시키거나 교차점, 구분하는 과정에 있어서 한참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책에 나오는 작품 소개를 따라가다 보면 스포에 가깝다고 느낄 만큼 세세한 내용이 나온다. 이해가 잘 되어 좋기도 하지만 독자에 따라서 읽기도 전에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건 아닌가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내용을 미리 알고 읽더라도 또 다른 느낌과 통찰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처럼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세계 속에서 저자가 안내한 지점을 찾아 서로 만날 테니. 마치 산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다른 것과 같다. 단지 좀 더 험하거나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3부의 '꿈을 찾다에서는 서로 어긋나는 관계와 소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완득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소통과 관심, 온기가 필요함을 격려의 메시지와 함께 읽을 수 있다.
4부 '꿈을 담다'를 읽을 때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힘이 되는 내용과 생각할 거리를 만나게 된다. 힘겨운 나날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허무와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다정한 속삭임 같다. 과연 우리는 이 부조리한 삶,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카뮈의 『이방인』을 이야기하며 '삶의 반항적 긍정'을 토로한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카뮈의 말대로 존재에 대한 선택지가 자살, 희망, 반항이 있다면 어느 하나가 아니라 '희망과 반항' 사이에 머물며 살고 싶다. 비관만 하기에는 존재의 시간이 너무 귀중하다. 따라가기 버거운 세상이지만 희망을 간직하고 싶다. 악이 끊이지 않지만 정의를 외치고 싶다. 힘들지만 묵묵히 나아가고 싶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철들지 말라'라고 말한다. 내게는 그 말이 오히려 철들지 않아도 좋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만나고 혼란을 거쳐 철드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먼저 그 길을 거쳐간 한 어른의 따뜻한 위로이자 격려 같았다.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성장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그들 또한 언젠가 그들만의 파도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이미 수많은 파도와 싸우고 이미 멀리 항해를 떠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파도는 시지프의 신화에 나오는 돌처럼 늘 다가오고 또 다가온다.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이 부당하며, 이 무의미한 고통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중략)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187쪽/『펼치는 책 열리는 꿈』
선과 악,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때로는 어른도 삶이 버겁고 허무함을 느낀다.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하나, 착하게 살아야 하나, 노력해야 하냐며 방황하는 건 사춘기 청소년만의 특징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삶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위해 처절히 노력할 수 있는 존재'(188쪽)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소통을 위해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을 잘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 책에 나오는 따뜻한 캐릭터와 어른과 용기를 내려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이 세상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영감을 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도처럼, 등불처럼, 친구, 선배, 혹은 따뜻한 멘토처럼 다가올 것이다. 성장을 앞둔 청소년, 폭풍우를 만나 혼란스러운 어른들,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인간이라면 방황과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으로 몸부림치더라도 우리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순수한 도움의 꿈을 찾아낸 홀든(『호밀밭의 파수꾼』)처럼.
혹여 급한 마음에 프롤로그를 건너뛰었거나 읽었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서라도 꼭 프롤로그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시 읽어보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9쪽)는 저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 책이 왜 단순한 추천 도서 서평집과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방금 누가 던진 돌에 평온해 보이던 호수가 윤슬로 일렁이는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