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 추이를 고려할 때, 두 세대가 지난 후 한국은 그야말로 '노인의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224쪽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7장 노인을 위한 나라, 노인이 없는 사회 중에서/이철희
문득 한 세대의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되나 궁금했다. 연구 분야에 따라 다른데 가계에서는 20년, 역사학에서는 30년, 통계학에서는 25년 정도를 한 세대라고 한다. 두 세대라고 해봤자 약 50년 전후다. 지금 50세라고 해도 노인의 나라에 살고 있을 확률이 많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노인의 나라'(225쪽)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 아이는 하나인데 그 뒤에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웃고 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니. 아이 한 명에 어른만 여섯이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가질 물리적, 정신적 부담은 얼마나 클지. 또 어른 가운데 한 명으로서 마음대로 사망 시점을 조절할 수 없는 마음은 또 얼마나 우울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뉴스로 접하는 한국의 고령화 추세는 미래라고 하기에는 머쓱할 정도로 일상이 되고 있다. 이미 2024년에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했으니 말이다. 내 나이만 보아도 조선시대였다면 이미 평균 기대수명(40세 전후)을 넘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균의 함정은 어디에나 있다. 영아 사망률이 워낙 높아서 이런 수치가 나왔지, 그 당시에도 70세 이상 사신 분(태조 이성계 73세, 영조는 83세)은 분명 존재했으니까.
출생률이 바닥을 치고 인구 절벽을 거쳐 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는 고령화 사회. 문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한 해가 가는 연말이 되면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진다. 늘 건강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관리를 해도 젊었을 때로 100%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두려운 것은 유병장수이다. 무병장수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인생의 중반 즈음에 와 있다고 여기고 싶다. 전반이라고 말하면 지금까지 산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것 같아 두렵다. 30대부터 시작해 만성질환을 달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점점 늘어나는 약과 치료로 병원을 다니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렇다. 아프지 않고 기력만 약해진 상태로 살다가 평온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 그것이 가장 바라는 나의 죽음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도 있지만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병이라는 고통 속에 지내다가 죽는 게 불행할 뿐이다. 내가 아프면 경제적으로도 스스로에게 부담이지만 나를 둘러싼 가족과 주변 이웃에게도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걱정이 된다.
'노인의 나라'.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노인이라는 게 죄는 아니다. 생명체는 모두 죽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늙는다는 상대적 개념이라서 상황에 따라 나는 이미 노인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 우리는 늙고 있다. 젊음은 20대가 가장 전성기인 것 같다. 물론 요즘은 젊어 보이는 사람이 많아 30대도, 40대도 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40대는 30대 보다 나이가 많고, 30대는 20대 보다 나이가 많다. 영어권에서 언니나 형, 동생이라는 명칭은 없지만 비교급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I am older than my son by 27 years.(나는 아들보다 27살 많아요)
I am younger than my sister by 20 years cause I was born very late.(나는 언니보다 20살 아래예요. 늦둥이로 태어났거든요.)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아이보다 '늙은 사람'이고 한자로는 '노인(老人)'이라 할 수 있다. 아들보다 27살 늙은 사람, 아이에 비해 나는 노인이다. :)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의 이철희 교수는 저서에서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를 위해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자는 말을 했다. 고령화는 이미 현재가 된 미래이고 소수만의 정책이 아닌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현상이다. 아프지 않고 최대한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살기 위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멋진' 파워 시니어(225쪽)'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약해지고 아파지는 생명의 원리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이를 떠나 열심히 살고 싶다. 나이가 아닌 사람 자체만 보는 '노인이 없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느린 속도라도 노력하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뛸 수는 없지만 걸어가며 젊은 세대도 응원하고 나 또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열심히, 충실한 하루를 살도록 일깨워 주세요. 겸손하게 행복하게 만족하며 성실하게. 감사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주세요. 부족하더라도 도전하게 해 주시고 때가 되면 많이 아프지 않고 주위에 피해 주지 않고 평온히 자다가 주님의 곁으로 기쁘게 떠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평온히 맞이하는 죽음. 그러려면 왠지 복을 많이 쌓아야 할 것 같다. 과학적으로는 전혀 말이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선행을 많이 쌓고 삶에 최선을 다하면 신도, 우주의 기운도 그렇게 나를 인도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