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준비하며

by 애니마리아


부제: 두렵지만 간절한 도전



오래전, 첫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은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성향과 관심 분야,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저 독립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그게 다였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일하자는 마음에 시작한 일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 건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외국어를 공부하며 중국어와 영어의 놀이터에서 허우적 댄 이상주의자의 어리석은 실수였다고나 할까. 공부한 것도, 논 것도 아닌 방황의 시간은 첫사랑이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시점에서 20대를 마저 보내느라 길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막연히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방황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든 일이든 쉬운 일, 쉬운 공부, 혹은 타인에 보기에 안정적인 분야만 탐색하며 진정한 나의 욕구와 본질을 외면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났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돈을 벌지 못해도, 식상하고 전망이 좋지 못해도 하고 싶은 분야인지는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다. 대학원, 영어, 문학도, 평생의 학자, 공부하는 사람, 책과 함께 하는 삶,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사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청사진은 없지만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겸손하게 배우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석사 과정은 누군가에게 무모하고 이상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인생에서 하다 보면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하는 후회를 선택하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고 더 이상 20대의 젊은 체력도 남아있지 않다.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할 고질병이 여러 개고 나의 노후는 불확실하며 부모님과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늘 마음을 졸이고 있다.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도전할 마음을 버리지 않은 건 남편, 나의 수호천사 안드레아를 만나서 가능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이나 며느리로서 늘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을 다 안아주고 사랑해 주며 곁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기에.



올해 8월 졸업이라 준비 기간은 2월 졸업생에 비해 무척 짧았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영문학 개론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익혀야 했다. 하지만 번역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우선순위에서 자꾸 멀어졌고 전형 일자가 다가오면서 준비를 조금씩 병행할 수 있었다.



번역학과가 있는 학교 하나, 나머지는 영문학 석사 과정이 있는 학교를 골랐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ZOOM으로 하는 면접을 시행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학업 연구계획서, 전공 분야 등 채워나가야 할 서류 및 공부가 꽤 부담스러웠다. 자소서와 학업 연구계획서, 입학원서, 졸업 증명서, 성적 증명서가 기본이지만 지원 학교마다 조건이 조금씩 달랐다. 추천서를 요구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자소서와 연구계획서를 합해서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영문으로 자소서를 추가 작성해야 하는 학교도 있었다. 한 학교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정말 정신을 똑바로 하고 꼼꼼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분량만 따져도 1500자, 2000자, 3000자 이내, 내외 등 달라서 내용과 양을 조절해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타인의 경험이나 샘플 자료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었다. 면접에서는 면접의 달인이신 교수님이 개인의 문구 하나라도 제대로 파고들어서 질문을 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솔직하면서도 철저한 내용을 작성해야 했다.



대학원 면접이 정해졌다. 전날, 제출한 자소서, 연구계획서를 읽으며 예상 질문을 정리해 보았다. 일찍 자고 싶었으나 10시가 아닌 한참 후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에 한 번, 2시, 3시, 4시 즈음 연속적으로 잠이 깼다 들었다를 반복했다. 의식적으로는 긴장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무의식적으로 신체가 반응한 것 같았다.



시험 당일이 되고 ZOOM 면접은 처음이라서 점점 긴장도가 높아졌다. 사실 세 학교의 면접일이 겹쳐졌다. 한 학교는 대면인 데다 시간 조율이 전혀 불가능해서 포기했다. 하지만 감사의 기적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 시간에 일어났다. 한 학교에서 시간을 조정해 주셔서 오전에 시험을 연속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둘 다 좋은 학교이고 가고 싶은 곳이기에 면접 기회만이라도 얻을 수 있어서 감격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시간 변경을 위해 애써주신 해당 학교 조교님께 감사를 드린다.



먼저 성균관대 시험. 대기 화면과 사이트에서 따로 신분증 검사를 했다. 컴퓨터 카메라에 대고 신분증을 직접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처음 치르는 독특한 방식에 신기하면서도 어색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당시에는 화면에서 글씨가 불투명하게 보여 한참 애를 먹었지만 말이다.



면접은 두 분의 교수님과 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자기소개와 희망 연구 분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셨다. 개별 질문으로는 갑자기 영문 소설을 화면에 띄워서 순차 번역을 해야 했던 게 가장 어렵고 당황스러웠다. 지문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시사, 하나는 소설이었다. 읽어본 소설이라 반가웠지만 동시통역 같은 번역 수행이 익숙하지 않아 실수도 있어서 많이 아쉬웠다. 교수님은 그 하나의 실수도 교정해 주시면서 친절하게 피드백을 주셨다. 재치 있고 정확한 수행이 부족해서 아쉽고 창피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첫 시험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혹여라도 학교명이나 관련 내용을 잘못 말할까 봐 긴장의 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드디어 서강대 면접이 시작되었다. 역시 두 분이었지만 한 분은 원어민 교수님, 다른 한 분은 한국이 교수님이셨다. 원어민 교수님은 밝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 주셨다. 마지막 질문은 예상은 했지만 완벽하게 어필할 자신이 없었다. 번역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번역학과가 아닌 영문학과를 지원했냐는 것이었다. 역시 핵심을 찾아내는 교수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평소 나는 번역과 순수 영문학 어느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둘 다 놓지 못한 미련을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영문학을 파고들 때의 장점에 더 집중했고 번역도 그 일환으로 도움이 될 거라는 요지로 말씀드렸다. 교수님이 원하는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학자의 길을 위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답을 택했다.'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를 떠올리며.



당황스러움은 계속되었다. 두 번째 교수님도 계속 영어로 질문을 하신 것이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영어로 100% 면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끝나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교수님께서 편안하게 이끌어주셔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합격 여부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책, 생각을 최대한 많이 말씀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시험 강도는 높았지만 그만큼 학교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게 되었고 처음과 다르게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도 커졌다.



세 번째 경희대는 서류 심사로만 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학과, 전공마다 다르고 해마다 조건은 달라진다고 한다. 이곳 캠퍼스는 꽤 멀지만 안드레아가 나온 학교라서 평소에 호감이 있었다. 영문학과 커리큘럼도 흥미로운 분야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아동 영문학이 제일 좋지만, 소수민족 문학, 여성학, K 문학 연계 생태학을 다루는 과정을 설계하는 추세도 이번에야 알았다.



중앙대는 가장 나중에 일정이 정해졌다. 독특한 것은 전에 본 학교와 달리 면접에 참여하신 교수님이 거의 2배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순간 긴장도도 높았고 질문도 많았다. 자소서와 연구계획서 내용을 깊게 파고들며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셨다. 중앙대 영문과 교수님 모두 관련 내용 조사와 검토를 정말 꼼꼼하게 하셨다는 게 느껴졌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진솔하게 최선을 다해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면접시험 일정만 두 달 정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그동안 3개 학교는 이미 결과가 나왔고 마지막 학교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한다. 합격한 학교 가운데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열심히 할 학교를 골라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큘럼을 검토하고 장단점을 분석했다. 어떤 학교는 멀기도 하고 저녁 수업이라 집에 오면 거의 자정에 가까워진다. 어떤 학교는 번역에만 치중할 수 없고 논문과 높은 수준이라는 큰 벽이 있지만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내게는 과분한 축복이라 여기며 마음을 정하려고 한다. 모든 조건이 내게 맞을 수는 없고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나의 의지와 실행력이니까.



대학원 진학 과정에 대해 이미 아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도전하려는 가운데 막연한 분도 있으실 것 같다. 나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많고 불리한 조건이 많다.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AI처럼 기계가 내놓은 듯한 원론적인 내용보다 실제 경험과 진정 어린 조언이 절실했다. 게다가 여러모로 어설픈 만학도라서 더욱 그랬다. 비슷한 꿈을 꾸시는 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기에 이렇게나마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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