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성지에서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다

by 애니마리아


17세의 소녀는 14세의 소년과 결혼하였다. 20살이 되던 해에 첫아들을 낳았고 이후 다섯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15년 후 장남을 마카오로 기약 없는 유학을 보냈다. 몇 년 후 여인은 막내아들이자 갓난아기를 안고 체포되었다. 젖이 나오지 않아 아기가 기아로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남편이 고문으로 옥중에 먼저 사망했으며(35세) 자신도 역시 모진 고문으로 몸이 부서지고 찢겨나가는 고통을 겪다가 참수형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39세(만 38세)였다. 바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5세가 되던 해,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나며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떠났는데 한 분은 병사하셨고 또 다른 친구는 중국에 남아 공부를 이어갔다. 이름은 최양업 토마스, 우리나라 두 번째 가톨릭 신부님이다. 김대건 신부님이 일 년 남짓 사목 활동 중에 체포되어 순교하시고(1846년) 몇 년 후 조선으로 입국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목숨을 건 사목활동을 이어가셨다. 1851년부터 1861년 사목 활동을 하시다 과로와 장티푸스로 영면하셨다. 향년 40세의 나이에. 김대건 신부님은 피의 순교자였기에 성인(Saint) 품에 오르셨지만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순직이어서 가경자(Venerable)의 칭호를 받으셨다.(로마 교황청) 가톨릭에서 로마 교황의 승인을 받아 훌륭한 덕행과 신앙을 인정받는 칭호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경자 (Venerable)-로마 가톨릭에서 신앙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에게 내리 칭호, 교회의 공식 인정 필요


복자 (Blessed)-죽은 사람의 덕행과 신앙을 증거 해 공경의 대상을 높여 이르는 말, 최소 1건의 기적 입증해야 함. 공식 미사 봉헌 가능


성인 (Saint)-가톨릭에서 일정한 의식에 의해 성덕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포한 이에 대한 시성. 복자 단계 후 추가 기적 인정 거쳐 교황이 시성을 선포. 전 세계 교회가 공식적 공경, 미사, 축일 지정 가능


교황청 및 네이버 사전(https://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saints/documents/rc_con_csaints_doc_20070517_sanctorum-mater_en.html? utm_source=chatgpt.com)



최양업 신부님은 가경자, 부모님은 각각 옥중 병사, 참수로 사망하셨기에 성인과 복자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초기 교회사에서 큰 노력과 희생을 하셨기에 지금도 시복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는 무척 기준과 심사가 까다롭고 엄격하다고 한다. 2016년 가경자가 되었지만 성인은커녕 복자조차 쉽지 않다. 이곳 수리산 성지는 최양업 신부님의 부모님이자 성인, 복자품에 오르신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의 유해 및 묘소가 있는 곳이다.


올해는 성지순례를 자주 다니자고 안드레아와 약속했지만 주말이라고 늘 시간이 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집안 행사가 있을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하니까. 가장 좋고도 짧은 가을에 가는 성지 순례는 그만큼 소중하다. 특히 심적으로 힘든 요즘 자꾸 미뤄졌던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10월 25일에 떠난 수리산 성지, 안양에 작은 성당과 순례지가 있다. 이곳은 전에 갔던 곳과 달리 웅장하지도 화려한 서양식 외관이 서 있지도 않다. 성지라는 비석의 환영 문구를 보지 못한다면 그저 옛날부터 있던 한 가문의 고택이나 오래된 집터라 여기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소박하고 아담한 성당과 십자가의 길, 동상, 비석, 묘소 등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미사 시간이 다가와 바로 본당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은근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라 그런지 단체 순례자와 개인 순례자가 섞여 어느새 신자석이 꽉 찼다.


성지의 신부님은 그날의 복음 독서를 바탕으로 강론하셨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그날따라 어린 학생들이 많이 온 것을 놀라워하시며 반가워하셨다.


"우리 성지는 원래 어른들이 많이 오시는데, 어린 너희들이 많이 왔구나. 그것도 단체로 두 성당(타지)에서 왔네. 아니, 왜 왔니? 이 오지에? 스스로 찾아오기는 힘들었을 텐데. 너희 지역 성당에서 신부님이 보내셨니?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자고 해서 왔니? 억지로 오느라 힘들었겠네."


"네! 맞아요."



다소 느릿하지만 정감 있는 목소리로 나누는 성지의 신부님과 학생들의 인사 겸 대화가 하도 솔직하고 웃겨서 미사 시간은 이를 듣자마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덕분에 엄숙하지만 지루할 수 있는 강론 시간에 활기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으로만 분위기가 흐른 건 아니었다. 그날 복음 말씀에 따라 역사와 지리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시면서 신부님은 문득 천국에 대한 말씀을 꺼내셨다.


"천국은 있을까요?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천국이 있다면 지옥도 있겠죠. 천국이 없으면 지옥도 없고요. 하지만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제가 가끔 말합니다. 흉흉하고 우울한 세상, 좋은 말만 해주면 안 되냐고요. 지옥이라는 끔찍한 말은 하지 말고 천국과 같은 기분 좋은 말만 해주면 안 되냐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사제로서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 그대로 전할 사명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빛이 있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고 선이 있다는 건 악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서 어두운 면, 나쁜 것을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저편에는 우리도 안다. 부인한다고 나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외면한다고 악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때로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행복한 날이 있으면 불행한 날도 있고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을 수 있다. 노력 없이 행운이 오는 날이 있다면 노력을 하고 열심히 살아도 불운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순례길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희생의 역사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감사하면서도 수행하는 마음으로 나의 십자가를 인식한 여행이기도 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형제자매로서, 세상의 한 줌 먼지가 될 사람으로서 가슴 아린 여정이었다. 미사 후 성지 주변을 거닐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건강과 은총, 안전을 바라는 기도로 마치며 다시 발길을 돌렸다. 짧은 순간의 기쁨보다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성지의 숨결을 다시 한번 눈과 마음에 새겼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에 속절없이 흔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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