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반성했어."
"응, 반성? 왜?"
"전에는 임영웅 노래 반주만 들어도 일 초 만에 무슨 노래인지 알아맞혔는데 오늘은 노래 제목 맞추는 데 뜸 들였어. 팬으로서 분발해야겠어."
내가 요새도 안드레아(남편이)가 임영웅 노래를 너무 많이 듣는 것 같다고 하니 그가 한 대답이자 농담이다.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의 황제가 된 지 벌써 햇수로 5년째, 안드레아의 임영웅 사랑도 5년 째이다. 그동안 그의 콘서트를 3번 갔고, 이번에 네 번째 전국 콘서트를 갔다. 2025년 그의 첫 콘서트이자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축제였다. 그의 콘서트의 예매조차 어려워 티켓을 구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이제 그의 팬클럽은 '영시'라고 불린다. '영웅시대'의 줄임말이다. 처음에는 영문과에서 종종 말하는 영시라는 어휘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표현되는 게 신기했다. 늘 팬카페에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안드레아와 달리 오랜만에 그와 동행한 길에서 느낀 열정과 변화들이 느껴졌다.
2025년 임영웅의 전국 콘서트 투어가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가 간 날은 올해 콘서트의 첫날이어서 더욱 특별했다. 매 콘서트마다 특징이 있는데 임영웅이 항상 연기를 했다. 처음 그의 콘서트에 갔을 때는 임금과 자객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조선 시대의 임금 복장과 수염을 붙인 모습, 연기가 무척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팬들은 그저 사랑스러운 눈빛과 추임새로 반응했다.
두 번째는 기억이 나지 않고 세 번째인가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처럼 미래 세상에서 나온 듯한 이미지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온통 푸른 우주 광선의 빛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맞물려 주로 붉은빛이 많았고 화려하면서도 환상 세계, 모험의 이미지가 강했다. 거대한 범선에 임영웅이 홀러 승선해서 갈색 물결처럼 펼쳐지는 들판을 항해한다. 마치 신세계를 찾아가는 콜럼버스처럼.
미리 공개된 2집 앨범을 실제 목소리로 듣는 경험과 감동은 직접 콘서트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240도 이상은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화려한 전광판의 파노라마 속 드라마가 끝날 찰나, 무대가 열리며 영상과 거의 똑같은 범선을 타고 임영웅이 등장했다. 카우보이 복장의 백댄서들과 신나는 컨트리 음악 리듬을 타며 펼쳐진 노래를 시작으로 임영웅은 그 다운 노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서정적이고 울림 있는 발라드, MZ 스러우면서도 톡톡 튀는 곡, 댄스곡, 어르신을 위해 만든 듯한 정통 트로트 곡, 드라마 OST 등 다양한 장르와 에너지를 발산한 무대였다. 이번 공연 내내 지켜보면서 나는 그만의 시그니처가 강하게 자리 잡은 듯한 자연스러움, 무척 늘었다고 느껴지는 춤과 연기 실력에 놀랐다. 뻣뻣하게 서서 긴장된 표정으로 2:8 머리로 트로트를 부르던 임영웅의 스펙트럼은 그만큼 넓어졌고 고차원의 예술미가 느껴질 만큼 발전한 게 보였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자신의 연기 촬영 때의 에피소드를 쏟아놓았다.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순환 회복', '에피네프린 투여!' 같은 용어를 외우기 너무 힘들었다며 투정 부리는 모습이 참 진솔해 보였다.
2집의 신곡 하나하나 정성을 들였겠지만 팬에 따라 각자 선호하는 노래는 다를 수 있다. 취향과 감성이 다르므로. 어떤 사람은 'Wonderful Life' 같이 댄스곡을 즐길 것이고 어떤 분은 타이틀곡인 '순간을 영원처럼'의 감성을 좋아할 것이다. 임영웅의 '골수팬'인 안드레아는 '비가 와서'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콘서트가 열린 날도 비가 왔다. 나는 평소 임영웅이 가장 임영웅답게 부르는 '모래 알갱이'나 '사랑은 늘 도망가'가 더 마음에 와닿지만 이번에는 'ULSSIGU'의 팝과 재즈가 섞인 발랄한 곡도 좋았다. 영화 'Saturday Night Fever'에 나온 비지스의 음악처럼 임영웅 스타일로 이 노래를 들으면 나 같은 몸치도 2000년대 감성에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된다. '얼씨구'를 외래어 표기법으로 표기한 것도 웃기지만 자칫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재즈와 댄스, 흥이 느껴지는 가사와 리듬, 소리의 반전이 있다.
임영웅의 공연에는 그가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늘 자리에 놓여 있다. 네 번을 가는 동안 선물도 나름 변천사가 있다. 처음 폭신한 재질의 헝겊 방석, 그다음에는 부드럽고 화려한 새틴 재질의 방석, 고급 재질에 센스가 돋보이는 멋진 우비가 있었다. 임영웅 팬들이라면 모두 아는 맑은 하늘색이 상징인데 이번에는 색감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하트 모양의 파스텔톤 분홍색 방석이 손잡이와 함께 놓인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대부분 여성 팬이기에 그들이 이 선물을 보자마자 터트렸을 탄성이 그려진다. '어머, 예쁘다!'라고. 가운데 그의 이름과 공연일, 장소가 쓰여 있어 소지한 내내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이 되었다.
임영웅의 콘서트에는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이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임영웅이 첫 노래를 부른 후 팬들에게 말을 건네며 앞 뒤 좌우 서로 인사를 시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반 즈음에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 팬들을 카메라로 비춰준다. 상투적인 말로 감사의 말을 표현하는 대신 자신은 점잖게 쳐다만 보는 남성 팬보다 '오빠'라고 소리쳐주는 어르신 팬이 좋다며 너스레를 부린다. 그만의 유머이자 콘서트 중에 팬들과 상호작용을 위한 루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팬들은 실수도, 투정도, 넉살도 모두 귀엽게 봐주며 웃고 감탄하기 바빴다. 그의 노래이자 세상을 향한 타이틀곡의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내성적인 면도 있지만 팬들 앞에서는 가장 편안하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많이 그리웠다고 말하는 한 예술가의 고백이 빛난 공연이었다.
그런 삶을 사세요
평범하게 웃는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과 담소도 나누며
남 미워하지 말아요
삶은 생각보다 짧아요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봐요.
'순간을 영원처럼' 중에서/임영웅
멋진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안드레아가 말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다음에는 정식 응원봉을 사서 가야지."
나의 남자를 반성하게 만들고, 노래 부르게 만들게 하며 그의 아내마저 변하게, 함께 즐기게 만드는 사람, 임영웅 IM HERO)이다. 그를 미워할 수 없다. 그를 통해, 그의 노래를 통해 나의 남자가 행복해하니까. 그 행복을 혼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누리려 하니까.
입구부터 미어터지는 듯한 공연장, 3일간 3만 명이 가까운 인원이 올 예정이라고 한다. 화장실 줄은 명절 때보다 더 길어 뱀 리를 틀듯 길고도 길었다.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임영웅의 선물, 로맨틱한 분홍 쿠션과 향기 나는 메모 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