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다시 찾은 그곳 <남양성모성지>

by 애니마리아



마침 덥지도 춥지도 않은 주말이었다. 아이들은 둘 다 대학생이자 성인이라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첫째는 먼 곳에서 자취하며 공부하느라, 둘째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 둘은 가장 아름답고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그저 건강하고 많은 경험을 하길 바랄 뿐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만 지내다오 ' 하면서.



2025년의 첫 국내 성지 순례지는 남양성모성지였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생애 가장 큰 성당과 독특한 성지의 건물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다. 사전에 이 성지의 특별함을 미리 알아보고 가지 못해 제대로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 비가 와서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하고 미사만 급하게 보고 왔기에 아쉬움이 남은 순례길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다시 찾은 남양성모성지를 향한 순례길이 기대되었다.



1866년 병인 대 박해 때 많은 순교자가 죽어간 무명 순교지기도 하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다. 처음에 나는 남양성모성지가 남양주에 있는 줄 알았다. 이름만 보고 대충 추측한 탓이다. 아, 지리에 약한 자(내가 이래서 길눈이 어두운가 보다)여, 좀 더 관심을 갖자!



지난번과는 달리 화창한 날씨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차량, 대형 버스, 그곳에서 내리는 단체 순례객들까지 인파가 엄청났다. 그래도 여유가 있는 공간, 인간을 품는 자연 속 성당이어서인지 바람도 포근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온화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조차 성지의 활기를 더해주었다. 예수님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셨던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대적 아름다움과 견고함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두 개의 기둥이 마치 쌍둥이가 마주한 것처럼 대칭으로 세워져 있다. 가운데는 얼핏 보면 비어있는 듯하다. 사실 상단부는 일곱 개의 종이 있고 대성당이 있는 중간부터 1층까지는 빛이 들어오는 유리창 구조라 두 건물을 연결하고 있는 형태다. 가까이 가면 독특한 모습이 선명해지며 개성을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종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각마다 옆에 설치된 울림 장치가 작동하며 성스러운 종을 울린다.



건물 기둥은 붉은, 하지만 흙색을 닮은 파스텔 톤 벽돌이 촘촘하고 균일하게 보인다. 흔하게 보는 벽돌보다 가로길이가 유난히 긴 벽돌로 두 건물에 쓰인 형태와 위치, 선의 모양 등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 이 성당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그는 '현대 교회 건축의 대가'로 불린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지 이전에 강남 교보 타워와 리움 삼성미술관도 지었다고 한다.




성당 외관이 벽돌의 예술을 보여준다면 내부의 아름다움은 1층의 소성당,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빛의 계단, 십자가상이다. 화려한 벽화, 천장화, 조각 등이 있는 전통적인 유럽의 성당과 달리 소성당은 무척 소박하다. 정면으로 빛이 비치는 예수님의 십자가상과 성모마리아 상이 전부지만 그 어떤 곳보다 시선이 모이며 감탄을 자아낸다. 나의 죄를,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무심함을 고백해야 할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특히 옆의 한국의 한지를 이용한 은은한 푸른색의 벽을 다시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유현준 건축가님의 영상을 보고 한지로 콘크리트 벽을 마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나서는 더욱 놀랐던 기억이 있다. 푸른색은 귀한 색으로 중동에서는 왕족의 색이었고 수많은 유럽의 성모님의 그림과 조각에 푸른 옷을 두른 이유이기도 하다.



2층 계단의 테두리에서 강렬하지만 편안한 빛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그 자체로 순례길이다. 처음 이상각 신부님은 이곳을 에스컬레이터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으나,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쇼핑센터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대성당이자 1,300여 명을 수용하는 본당은 십자가 상과 양쪽 아래의 성경 그림이 압권이다.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빛이 시기와 방향이 맞으면 십자가 상 양쪽으로 천사의 날개가 펼쳐진 모습이 구현된다고 한다. 하지와 춘, 추분 등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귀한 기회에만 볼 수 있다면서.



본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십자가상은 멀리 있지만 멀어 보이지 않는다. 멈춰 있지만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하다. 지난번과는 다른 느낌에 신기할 정도였다. 전통적인 성당은 가장 안쪽 벽에 십자가 상이 설치되어 있으나 이곳의 십자가는 벽에서 벗어나 공중에 떠 있는 형상으로 신자들을 맞이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다소 낯선 느낌에 무섭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전통적인 예수님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고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게 아니어서 든 느낌이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눈을 크게 뜨고 밝은 표정으로 두 팔을 벌려 나를 환영하고 안아줄 듯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너라. 나의 벗이여.'라고 외치는 예수님처럼. 슬프지 않은 예수님, 기쁜 표정의 예수님, 모든 죄인을 위해 오신 예수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미사 중에 내가 펑펑 울게 될 줄은. 신부님은 강론을 하시며 한 부부의 이야기를 하셨다. 두 통의 편지를 읽는 형식으로 하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나머지 한 통은 첫째 딸이 엄마에게. 남편의 사연은 안타까운 이야기로 시작했다. 아이 다섯에 막내까지 임신한 아내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위해 낙태를 권했지만 아내는 거절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 아이를 낳았고 진통제는 전혀 듣지 않아 출산 후에 더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나머지 아이들, 남편과 이별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입을 꼭 다물고 신부님의 음성을 듣던 나는 엄마를 잃은 딸의 편지에 결국 울음이 터졌다. 대략적인 내용을 기억하면 이렇다.


엄마,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며칠 있으면 병원에서 엄마가 집에 올 것 같은데.
바보같이 치료도 안 받고 그런 결정을 했어.
나는 이렇게 울고 있는데, 웃고 있는 엄마 사진을 보니 솔직히 화가 나.
엄마가 미운데, 미워할 수가 없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그곳은 좋아? 아무리 좋아도 아빠까지 데려갈 생각은 하지 마. 아빠는 안 돼.
엄마, 사랑해.
(중략)

어느 성가정 따님의 고백




이 가정의 아이들은 총 여섯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둘, 그리고 막내는 겨우 돌 정도밖에 안 된 아기였다고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자녀란 무엇인가. 나를 희생할 만큼 큰 사랑은 무엇인가.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수많은 질문과 번뇌가, 그리고 사랑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 가정의 행복과 은총을 빈다. 슬픔이 슬픔으로 머물지 않고 그 어떤 견고한 성당보다도 단단한 사랑이 되길 바란다.



울면서 참여한 미사 전례였음에도 나오는 길은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 공기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미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 깨달음과 지혜, 성찰의 시간에 감사했다. 순간에 충실하고 내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리라. 모든 순간에 감사하리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내가 받는 은총을 최대한 기억하리라.



주말은 웬만하면 가족과 함께, 혹은 나의 짝꿍 안드레아와 함께 보내려고 한다. 집안 행사나 일, 시험과 같은 일정이 없으면 그와 시간을 보낸다. 그는 나의 수호천사기에. 사라 패니패커의 『팍스(Pax)』에서 아내 여우 브리스틀이 남편 여우 팍스에게 했던 말처럼. 어린 늑대 새끼를 품에 안고 경계하되 애정과 연대가 느껴지는 말.


'Stay close, but not too close'


직역을 하면 '가까이 있어 줘, 너무 가까이는 말고'이지만 나는 조금 바꾸어 말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멀리 가지는 마세요. 내 곁에 머물러 줘요.'


그렇게 우리는 약속했던 대로 그날의 성지순례를 마쳤다. 안드레아와 마리아로서 걷고, 듣고, 울고, 웃고, 먹고, 감사하며.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 『 EAT PRAY LOV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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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와 성당 사잇길로 가브리엘 천사 상이 있다. 성경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메신저로 알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린 천사이기도 하다. 그가 든 백합은 순결과 정결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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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소성당의 예수님 상과 성모마리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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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대성당의 예수님 상

20세기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 Giuliano Vangi'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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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를 거닐다 보면 테레사 수녀님의 상과 글도 볼 수 있다.



입구와 성당 사잇길로 가브리엘 천사 상이 있다. 성경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메신저로 알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린 천사이기도 하다. 그가 든 백합은 순결과 정결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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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감독라이언 머피출연줄리아 로버츠, 제임스 프랭코, 리차드 젠킨스, 비올라 데이비스, 빌리 크루덥, 하비에르 바르뎀개봉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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