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도 아니고 허술한 건물 이야기도 하니다. 일본 책이 위험하다고 한다. 왜일까. 책의 앞표지의 구성과 일본기의 모습과 제목을 보고는 그리 흥미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일본 이야기, 뭐 새로울 게 있나? 국사 시간에 배운 것만으로도 과거 일본의 만행과 관계는 충분히 아는 것 같은데'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문득 표지의 정반대 편을 본 적이 있다. 프롤로그에도 나오는 문구에 돌연 긴장이 되었다.
"일본 비판은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라 뼈 때리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
일본에 무조건 "노!"를 외치고 "반일이면 무죄!"라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각오로 쓴 일본론.
프롤로그 및 책 뒤표지 중에서.『위험한 일본 책』
이 두 문장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이자 독자에게 호소하는 외침이다. 특히 일본이라면 치를 떨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묘한 경쟁의식으로 신경이 쓰이는 한국인에게 말이다.
저자 박훈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도쿄대학에서 공부한 전문가이다. 현재 서울대 역사학 교수를 재직하면서 일본에 대한 연구, 강연, 집필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및 역서로『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과서와 언론, 주변의 전통적 시각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에게 이웃 나라 일본의 참모습, 역사, 민족성, 한국과의 관계와 앞으로의 지향점 등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일본과 한국은 닮은 듯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과 섬나라로서 문화를 전해 받아 살아오다가 아시아의 맹주, 제국주의의 선봉에 섰던 일본의 뿌리를 고찰한다. 이는 무척 재치 있다고 느낀 소제목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정학적 지옥, 한국, 지질학적 지옥, 일본(50쪽)'
남한이 일본의 지진과 화산 소식에 어찌 그렇게 빈번한 재해 가운데 사냐고 물었다 한다. 이에 일본은 전쟁과 북한 리스크가 있는 남한에서 사람들이 어찌 살 수 있겠냐고 응수했다는 말에 웃음이 나면서도 수긍이 되었다. 개개인이 모두 각자의 걱정과 애환이 있듯 나라마다 뭔가 고칠 수도 없고 고치기 힘든 사정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듣고 배운 것 중에 일본에 대해 오해하고 있거나 편견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령 일본은 원래 후진적이거나 머리가 우리가 더 낫다든지 하는 편견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당당히 말한다. 근대화 시기 일본에 크게 뒤진 조선의 역사에서 하루아침에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에 대한 보상 심리가 깔려 있다고. 다소 과격한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자의 설명과 전후 관계를 읽다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기존 의견을 수정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외에는 배경과 진행 상황, 주도 세력, 성공 관계, 의미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무라이 대 사무라이 전쟁이었다든지, 일왕과 천황의 차이, 그 둘을 구분해 읽는 진정한 심리 등을 알 수 있어서 여러모로 배움의 기회가 많았던 시간이었다.
제국주의라는 오판과 그릇된 행위는 비판이 마땅하되 일본에 배울 점 또한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적이라도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고 배우며 존중하는 데나는 막부가 뭔지, 다이묘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거부감을 표시했었다.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심, 무시하는 태도, 혹은 냉담한 태도도 있다며 불편하지만 사실을 새삼 느꼈다. 축구 경기만 있어도 꼭 이겨야 하는 상대로 인식하고 광복절, 삼일절에는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노력 또한 인정해 주고 우리도 그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이지만 필요한 부분도.
그럼에도 다소 과격한 말투에 불쾌함을 느낄 독자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일 간의 오랜 애증의 역사로 인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게 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자존심을 세우려 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일 텐데 그런 감정이 마치 시대착오적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제에는 맞지만 다소 어려운 한자 표현, 일본 어휘들이 꽤 많이 나와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모원려(106쪽)와 같은 어휘는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뜻을 따로 검색해 보고 나서야 확실히 이해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심모원려深謀遠慮는 깊이 생각해 낸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본 생각이란 뜻이다)
'막부 편'을 읽으며 알게 된 유능한 일본의 정치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 가운데 하나이다. 메이지 유신을 추진했던 하급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막부 출신이었던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과감하고 현명한 판단, 큰 배짱 등은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 일본에서 간혹 이는 한일 상호 인식의 변화, 혐한 현상, 사과 요구의 반복으로 오히려 침묵하는 일본의 모습을 되짚어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 서두에 나온 주장처럼 일본의 문제점을 비판하되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거나 냉담하며 단절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결코 우리 모두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한국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어조와 태도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정신없게 만들었지만 저자는 한국인으로서 우리에게 자부심도 심어 주었다.
"대한민국은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하지 않고도 '열강'과 선진국이 된 거의 유일한 나라다"(172~173쪽)
그러고 보니, 한국이 G8 초청을 받고 언론에 비친 적이 있다. 주변 회원국을 둘러 보건대 한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거의 서강 열강 내지는 제국주의(일본)를 추종했던 나라였다.
개인적으로 일본을 대하는 우리나라 인물(도산 안창호,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등)의 의견이 담긴 에필로그는 천천히 읽고 새겨들을 만하다고 여겼다.
3.1 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은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258쪽
또한 부록에 작가가 기고했던 시바 료타료의 <한나라 기행> 리뷰와 김훈의 <하얼빈> 리뷰가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인배의 마음으로 국력과 문화의 힘을 키우고, 자존심보다는 자부심과 어울림으로 한일이 함께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일본 문화,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필자처럼 일본에 대해 가진 편견을 진단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몰랐으면 모를까, 새로 알게 된 우리와 이웃나라의 참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소 거칠지만 뼈아프게 진단하며 벽을 허물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이기고 싶든, 지고 싶지 않든 상대를 잘 알고 나를 알아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