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속담)
'습관을 들이기는 쉽지만 다시 들이기는 어렵다'(빅토르 위고)
습관에 대해 종종 언급되는 문구다.
좋은 습관 만들기도 나쁜 습관 버리기도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소 21일이 걸리네, 60일일 걸리네, 아니 100일은 채워야 하네' 하면서 수많은 이론과 경험담이 넘쳐난다.
처음 시작과 노력은 분명 힘들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일단 습관이 되고 버릇으로 굳어지면 안정기에 접어들며 훨씬 수월해진다. 하지만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날 심각하게 생각을 하다 결심하고 실천하게 된 행위가 습관이라는 목표에 다다르면 생각을 멈추기 때문이다. 인생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생각했는데 또 다른 오류를 낳은 경우가 있다.
웬만하면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하려 한다. 특히 요즘에는 해가 일찍 뜨는 바람에 타 계절보다 눈도 일찍 떠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더위보다는 추위에 약하지만 덥고 습한 날씨는 여전히 방해 요소라 더욱 오전 운동을 선호하는 편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짧게 운동하고 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준비하는 과정이 좀 힘들긴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었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오전에 시간 맞춰 가야 할 병원 일정도 두 군데나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허둥지둥 준비해 집을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 헬스장을 향했고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지만 잠시 헉헉 대면서도 주변의 나무 냄새를 맡는 그 길이 참 좋았다. 벌써 6 개월째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곧 귀에 꽂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평소대로 가던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5~6분쯤 지났을까. 헬스장에 다다른 나는 1층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아차'하며 탄식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고 '바보!'를 속으로 외치며 왜 또 이런 실수를 반복하느냐며 스스로 핀잔을 주었다. 아파트 내 헬스장은 주말에도 운영한다. 대신 한 달에 두 번, 둘째 주 수요일과 넷째 주 수요일에 휴무인데 그날도 바로 헬스장이 쉬는 날이었다. 전에도 생각 없이 습관대로 길을 나섰다가 허탈하게 돌아선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핸드폰 앱의 캘린더에도 일정을 표시해 두고 책상 달력에도 표시하는 등 이중, 삼중으로 관리하려고 애썼다. 수시로 달력을 확인하며 이날은 다른 일을 하거나 해서 시간 낭비를 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고도 당일에 깜박 잊고 습관대로 행동한 것이다. 몸에 내 정신을 온전히 맡기고 생각을 덜 한 탓이었다.
단순히 건망증이나 실수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몸의 이상이 자주 느껴지는 요즘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는 것도 좋지는 않아 허탈한 웃음 한 번 짓고는 훌훌 털어버리려고도 했다.
'그냥 걷기 운동이라도 했다고 치지 뭐. 오며 가며 십여 분, 계단 오르기만도 어디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몸에 밴 습관으로 기이한 장면이 연출된' CSI 미드'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건 초반 강력한 미끼 장면으로 꽤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느 중년 남자가(배경은 미국의 주택가) 잠옷을 입은 채 주택인 집문을 열고 나온다. 손에는 커피 머그잔이 들려 있고 문밖에 바닥에는 막 배달된 신문이 놓여 있다. 늘 이 시간에 하는 루틴인지 남자는 신문을 집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순간 남자의 뒷모습이 줌인되었다. 놀랍게도 남자의 머리 뒤쪽은 총을 맞아 큰 구멍이 난 상태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신문을 들고 나서 몇 초 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라고,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되면서 이를 조사하는 수사관과 의사의 대화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의사 말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는 강력한 버릇 내지는 습관에 길들여진 경우 때로는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혹은 무의식적으로 뇌와 상관없이 몸의 기억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항상은 아니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사지가 잘려도 움직이는 낙지의 신경 반응처럼 인간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이 워낙 충격을 받아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깊숙이 기억 세포에 남아 있는 듯하다.
물론 드라마의 경우와 내 엉뚱한 실수는 같다고 볼 수 없지만 습관에서 나오는 오류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의 습성을 무조건 거스를 수도 없는 일인데.
단순히 기계적인 삶에 매몰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습관 들이기도 중요하지만 생각하는 삶에 특히 의미가 있다.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그 어떤 동물군보다도 강한 존재다. 식상한 표현이고 누구나 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안다고 곧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글쓰기와 단상을 통해 감사하고, 글을 쓰고 마음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발전하고 더 나은 관계, 삶을 향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습관과 반복은 확실히 의욕이 약해질 때 큰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이사이 잠시 멈추고 돌아보고 되짚어보고 반성하고 기록하면서 생각을 하는 과정이 있으면 더욱 삶이 풍성해질 듯하다. 오차 없이 깔끔한 처리는 AI와 같은 기계로 충분하지만 완벽 속에서도 편견을 찾아내고 오류를 발견하며 더 나은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인간의 생각, 그 행위에서 비롯될 터이니 말이다. 길을 걷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현대인. 지루함은 해결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생각하는 순간을 스스로 버리고 있다. 생각을 점점 안 하는 행위에 익숙해지는 경향은 과연 좋은 습관일까, 나쁜 습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