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아침 9시 반이었다. 자동적으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오빠는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새근새근 오빠의 숨소리를 들으며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몇 달 전만 해도 미라클모닝 한다며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책 읽고 공부하고 운동했던 나인데, 과거의 내 모습이 낯설 만큼 무기력하고 지쳐버린 내 모습에 또 새삼스럽다.
오빠는 30분만 더 잔다며 눈을 감았다. 나도 같이 잠들었다. 정확히 30분 뒤 알람 소리가 울렸고 이미 밝은 아침이었지만 오빠가 켠 전등 덕분에 더 밝아졌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미안해 나 책 좀 읽으려고 불 켰어”
오빠는 내 옆자리로 다시 돌아와 ‘책은 도끼다’를 펼치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 장면을 보고 몸을 돌리며 핸드폰을 켰는데 11월 1일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11월이라니,,,’
평소 같았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선 다시 잠들었을 텐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다른 하루로 보내고 싶었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매년 1월에 다짐을 하고선 무너졌다가 매월 1일에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금붕어도 아닌 것이 작심삼일도 부족해 작심 3시간이었다가 또 1이라는 숫자를 보면 다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와 힘이 생긴다. 불행 중 다행이다.
평소엔 루미큐브만 2시간 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1-2판만 하고선 점심을 위한 밥을 지었다. 빨래를 개는 동안 오빠는 점심을 차렸고 출근 전 오빠와 짧은 대화를 하며 친정어머니가 보내주신 갈비찜과 미역국을 먹었다.
얼마 전엔 내 생일이었고 다음 주 수요일이면 오빠 생일이다. 내 생일날 엄청난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준비해준 오빠는 내심 자신의 생일 선물이 기대되나 보다 조심스레 자신의 생일 때 뭐하는지 물어보는 오빠가 참 귀엽다.
부담 아닌 부담으로 오빠 생일 때도 정말 근사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며칠 전부터 고민 중이지만 쉽지 않다. 평소에 오빠를 더 관찰하고 미리미리 갈 곳들을 정해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늘부터 오빠를 더 관찰하고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서 내년 선물은 예상치 못한 멋진 선물을 해줘야지! 속으로 다짐한다. 물론 이번 생일 때도 최선을 다해 준비할 생각이다.
오빠는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빠르게 밥을 먹고 출근했고 나는 천천히 나머지 밥을 다 먹었다. 테이블을 정리하며 쌓인 설거지통을 봤는데 과거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2019년 3월,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오빠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물론 내 생각이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실을 서로가 알게 됐다. 오빠의 기분은 잘 모르겠지만 난 내심 기뻤다. 오빠가 해주는 맛있는 요리를 먹고 기쁘게 테이블 정리하며 설거지를 했다. 거의 2년이 다돼가는 지금은 오빠가 요리하고 설거지도 한다. 오빠가 세 번째 한 달 유급휴가를 받았을 때, 나는 재택근무를 하곤 했지만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오빠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곤 했다. 최근에 오빠의 유급 휴가가 끝나고 출근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오빠가 해주던 집안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 설거지통을 보니 그간 말없이 또 언제나 웃으면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며 나를 내조해주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하고,,, 여럿 감정이 느껴졌다.
오늘은 내가 오빠가 오기 전에 모든 집안일을 다 해놓으리라! 다짐하고선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였다. 설거지뿐만 아니라 싱크대 전체를 청소하고 청소기로 안방 작은방 거실을 밀고 또 항상 어지럽던 내 책상을 정리했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오빠가 기뻐하는 모습, 편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행복해졌다.
오빠도 매번 집안일하며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이 서로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서로의 행복함만 떠올릴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를 더 가까이서 관찰하며 내 곁에 있는 오빠가 더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도록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오늘부터 100일 동안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익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며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관찰하는 것이다.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조금 더 깊게 바라보며 주변의 것들을 단단한 의미로 되새기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매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관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