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노 마키코 · 이소노 마호
볕 좋은 어느 봄날, 파주에서 들른 한 서점에서 블라인드 북으로 만난 이 책은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25년, 내가 가장 자주 꺼내 읽은 책이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까지는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알 듯 말 듯한 인생의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 앞에서 매번 어떤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이 글을 서랍 속에 넣어두기만 했다. 그러다 최근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비로소 필연처럼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삶의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싶은 당신에게’라는 문구에 이끌려 선택하게 된 이 책은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열 통의 편지를 엮은 글이다. 한 가지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미야노는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단지 죽음을 앞둔 철학자나 암 투병 환자의 기록으로 읽는다면, 아마 얻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 '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선(궤도)’을 그려 나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유방암이 재발해 투병 중이던 미야노 마키코는 문학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이소노 마호에게 편지를 주고받자는 제안을 한다. 처음에는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삶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전문적으로, 깊이 탐구해 보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여정의 끝에는 우연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만남과 이야기가 남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삶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깊은 사유의 길로 독자를 이끈다.
작가는 우리가 세상을 ‘확률’로 이해하려 하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확률 앞에서 쉽게 멈칫하게 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회피하도록 발달해 왔으니,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생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의 사고는 언제나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갈림길 중 하나로 들어서는 것은 외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가능성들을 만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간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겨울,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른 12월의 어느 날, 독서 모임의 주제는 '시간'이었다. 연말을 맞아 이미 흘러가버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주제와 연관된 책을 한 권씩 소개해야 했는데, 큰 고민 없이 나는 곧바로 이 책을 떠올렸다. 시간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흥미롭게도 그날 모임에서 소개된 책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아니라 '선택'에 관한 책들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였을까. 분명 주제는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왜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택의 문제로 이어진다. 시간을 잘 쓴다는 말은, 결국 잘 살아간다는 말과도 닮아 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우리는 그 흐름 위에 우리의 선택을 실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고자 한다. 어쩌면 그것은 삶을 통제하려는 사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삶은 통제 가능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이긴 할까. 선택은 언제나 결과를 향한 출발점일까? 미야노와 이소노의 편지는, 선택이란 그저 여러 길로 이어지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택함으로써 어떤 나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선택함으로써 '나'를 발견하는 것이 불확실한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이러면 어떡해요 저러면 어떡해요' 한강물처럼 넘쳐나는 불안을 끌어안고 던진 내 질문에, 선생님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뭘 어떡하긴 어떡해, 감당하면 되지."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순했던 이 한마디는 신기하게도 매번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
"그리고 앤희씨가 내리는 선택이 늘 최선은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두 번째로 좋은 선택일 거예요.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내릴 사람이 애초에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의 불안은 스스로를 너무 이르게 완성시키려는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완성되는 퍼즐은 재미가 없는데. 삶이란 계속해서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고, 마침내 죽음과 함께 '나'를 완성시키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인생에서의 자기소개 순서는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를 고백하는 것. 그것이 이 기나긴 여행의 룰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우리는 '죽음'을 '지금'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죽음'은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갈림길 중 하나로 들어서는 것은 외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가능성들을 만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능성이란 계속 나뉘는 길 중에서 도착지를 알 수 있는 한 줄기 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가능성이란 항상 쉬지 않고 변화하는 전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을 떠나 전혀 다른 인생을 상상하고자 하는 이유는 인생이란 제각기 다르며 지금의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무수한 가능성을 잉태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조건과 여러 줄기의 흐름이 한순간 '만나서' 우연히 '지금'이 태어납니다. 야구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현실이란 이렇게 성립되는구나 하며 놀랍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현실이 태어나는 순간은 물론,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강인함도 아름답습니다.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생각하면 차이가 뚜렷해질 것 같습니다. 불운이란 한 줄로 늘어선 여러 가능성 중 실제로 한 가지(점)가 일어난 것입니다. 한편 불행은 이미 일어난 일을 과거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두고 의미를 부여한 결과입니다.
멈춰 서서 악수하거나 상대를 받아준다고 관계성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함께 운동하여 계속 선을 그리면서 세계를 통과하는 것, 그러는 와중에 서로를 기분 좋게 하는 언동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발자취로 남긴 다음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란 바로 이렇게 앎과 깨달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운동)이 아닐까요.
인생에서 닥치는 영문 모를 일을 받아들이고 단순한 연결점이 되지 않으려 저항하면서 사람들과 진실하게 마주하고 함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겠노라 각오하는 용기가 바로 운명인 것 같습니다.
선택함으로써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선택이란 '고르고 결정한' 끝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란 우연을 허용하는 행위다. 그때 우리는 선택에 해당하는 일만 결단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과 우연성까지 포함한 일 전체에 대응하는 삶의 방식을 결단하는 것이다. 우연을 받아들일 때야말로 '나'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