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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은 천재 작곡가,파격에 감동을 더하다

뮤지컬 <모차르트(MOZART)!>

 묵직하게 드리워진 붉은 커튼 사이로 돌아선 한 남자가 보인다.

 청바지 차림에 기다란 갈색 머리.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외양부터 예사롭지 않다. 모든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할 때 눈부신 섬광이 비추고, 그는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신의 선물’이자 ‘하늘이 내린 천재’라 불리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 1756~1791)다.    



 유럽 뮤지컬 신화의 시작을 알린 대작 뮤지컬 ‘모차르트!(MOZART!)’가 한국 초연 10주년을 기념해 6번째 시즌 공연으로 돌아왔다. 비교적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로 극을 이어가는 성스루에 가까운 뮤지컬로, 러닝타임이 무려 175분이나 될 만큼 분량이 꽤 되고 알차다.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초로 공연된 뮤지컬 ‘모차르트!’는 뮤지컬계 명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뜻을 모은 결과물이다. 2010년 한국 초연 당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일 매진, 당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 총 11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뜨거운 인기를 끌었지만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여러모로 변화도 많았다. 아마 이전에 ‘모차르트!’를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각자 기억하고 있는 작품의 분위기나 흐름이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이라 자부했을 정도로 올해 ‘모차르트!’는 확실히 스토리를 좀 더 강화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이번 공연은 새로운 10년을 위한 도약을 약속한 시즌이기도 한 만큼 더욱 특별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개막일이 한차례 연기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철저한 방역 조치와 정부 예방 지침 준수 조건 아래 지난 6월 16일 관객들과 만났다. 결과적으로는 무사 순항 끝에 연장공연까지 확정 짓고 오는 8월 23일 막공을 올릴 예정이다.


2020 뮤지컬 <모차르트!> 주연 '볼프강 모차르트' 캐스트 : 박은태, 김준수, 박강현 (EMK뮤지컬컴퍼니)


 캐스트를 공개하지 않은 블라인드 티켓팅으로 우려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모차르트!’지만 결론적으론 화려한 출연진이 대거 포진하며 작품에 기대감을 더했다. 먼저 볼프강 모차르트 역에는 이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 데뷔를 알렸던 김준수와 이번 시즌 새로이 합류한 박강현, 그리고 ‘모차르트!’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박은태가 이름을 올렸다. 또 ‘황금별 장인’이라 불리는 신영숙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김소현이 모차르트의 후원자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을, 묵직한 음성으로 극에 안정감을 더하는 민영기와 손준호가 그릇된 소유욕을 품었던 모차르트의 고용주 콜로레도 대주교를 맡았다. 이밖에도 레오폴트 모차르트 역에 윤영석과 홍경수가 열연하며 뜨거운 부성애를 선보이고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 역에는 김소향·김연지·해나가, 난넬 모차르트 역으로 전수미와 배다해가 무대에 올랐다. 콘스탄체의 어머니인 체칠리아 베버 역 김영주·주아, 모차르트 생애 후반기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함께 했던 문화계 팔방미인 엠마누엘 쉬카네더 역 문성혁·신인선, 아르코 백작 역의 이상준도 톡톡 튀는 연기와 노래로 극에 재미를 더했다.     





 본격적인 막이 오른 순간, 모든 시공간은 과거 모차르트의 생애 한가운데로 집중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작품은 그가 남긴 예술적 발자취를 따르기보다 ‘위대한’ 모차르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근원적 불변의 진리에서부터 출발했다. 독특하게도 아마데 모차르트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해 순수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청년 볼프강 모차르트의 곁을 맴도는데, 같지만 확실히 다른 둘이 의미하는 바가 상당하다. 빨간 연미복 차림에 흰 가발을 쓰고 말 한마디 없이 볼프강 모차르트의 곁을 열심히 따라다니는 아역배우가 바로 아마데 모차르트인데, 이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다 보면 볼프강이 작곡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할 때, 아마데는 곁에서 이를 말리거나 불만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땐 발을 동동거리며 기뻐하기도 한다. 작은 손으로 뮤직박스를 들고 다니며 쉬지 않고 작곡하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그래서 뮤지컬 ‘모차르트!’를 볼 때는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이 두 모차르트의 동선을 부지런히 따라가야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또, 어느 좌석에 앉느냐에 따라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다면 층을 달리해서 한 번 더 보는 것도 추천한다.



 작품에 좀 더 깊숙이 몰입하고 싶다면 뮤지컬을 보기 전, 모차르트의 삶에 대해 미리 조금이라도 알아두고 가는 것이 좋다.

 음악의 신동이자 천재 작곡가로 알려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1791년, 35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여기에서 ‘아마데우스’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미완성곡인 K.626. 레퀴엠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남겨둔 작품 수도 어마어마하지만 워낙 뛰어난 곡이 많아 음악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로 다뤄진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음악의 신동이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하는 데는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공이 컸다. 그는 아들이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어릴 때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녹록지 못했던 탓에 귀족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볼프강의 상류 사회 진출을 꿈꿨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궁정악단에 자리를 잡으려던 희망이 좌절되자, 볼프강은 어머니와 함께 타지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슬픔에 힘겨워하던 볼프강은 어렵게 홀로서기를 결심하나 그의 행보에 반대하던 아버지와 커다란 갈등을 빚는다. 이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을 하고 작곡 활동에 집중하며 장르를 불문한 성공을 거머쥐게 되는데, 여러모로 지쳐버린 볼프강의 후반부 생애는 고통 그 자체였다고 전해진다. 머지않아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마저 잃게 된 뒤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다. 빈의 상류 사회는 점점 그와 멀어졌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했으며, 단기간에 작품 활동을 몰아쳐서 하다 보니 결국 건강마저 잃고 말았다. 그리고는 신원 미상의 인물로부터 진혼곡인 ‘레퀴엠(K.626)’ 작곡을 의뢰받고 미처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그의 재능을 질투했던 살리에리가 자신의 곡이라 발표할 목적으로 신분을 숨긴 채 찾아와 의뢰한 것으로 그렸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레퀴엠은 그의 제자가 완성한 곡이다.        


뮤지컬 <모차르트!> 포토월 (세종문화회관)


 뮤지컬 ‘모차르트!’는 이 같은 모차르트의 일생을 압축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일화들을 놓치지 않았다. 겨우 여섯 살에 불과했던 모차르트가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 후 곧바로 달려가 안겼다는 이야기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콘스탄체가 부모님의 압박을 받아 작성한 모차르트의 결혼 서약서를 시원스레 찢어버린 이야기, 대주교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으며 아르코 백작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 물론 방대한 분량을 한정된 시간 안에 풀어내느라 일부 장면 간 연결이 인물의 감정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여백이 작품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가볍지 않은 분위기에 쉼표를 찍으며 분위기를 전환하고, 잠시나마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주는 느낌이다.     


 클래시컬한 선율에 록과 재즈가 가미된 음악은 마치 오페라 같기도 하면서 현대의 콘서트를 연상시키기도 할 만큼 세련됐다. 특히 대표적인 인기 넘버 ‘황금별’은 동화 같은 가사와 더불어 공연장 가득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모차르트의 정체성을 표현한 ‘나는 나는 음악’, 부서진 거울이 조각난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며 부른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와 또 다른 외로움에 괴로워하던 콘스탄체의 ‘난 예술가의 아내라’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넘버다.      




 봉건 질서와 낡은 체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운명에 온몸으로 맞선 모차르트. 이처럼 위대한 족적을 남긴 천재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고 또 어디에 묻혀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사랑받고 싶었고, 또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던 청년은 오선지 위에 그 마음을 자유로이 풀어냈다. 신이 주신 천재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으나 이기적인 사람들 틈에서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의무감은 늘 그를 압박했다. 성공으로 빛난 영광 뒤엔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쓰디쓴 좌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황금별을 그리던 왕자가 홀로 남아 외로움을 삼키는 모습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음악의 신동이 오페라의 거장으로 성장하며 세상을 놀라게 할 음악을 작곡하는 동안 그의 생명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닳아버린 힘의 원천은 천진했던 미소마저 앗아갔다. 짧은 생을 마감할 무렵, 꺼져가는 삶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일 때 모차르트는 그제야 자신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다.      

 가슴 뭉클했던 이번 시즌 커튼콜, ‘황금별’을 뒤로하고 먹먹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에도 깊은 여운이 남았다. 놀랍게도 모두 ‘위로’를 말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서둘러 눈물을 닦으며 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차르트의 삶은 비록 힘겹고 쓸쓸했지만, 특별한 음악과 감동으로 가득 채워진 무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더욱더 따스한 위로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가 ‘모차르트!’를 봐야 하는 이유다.                








* 쾨헬 번호(K.) : 작품 번호이며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 루트비히 리터 폰 쾨헬의 이름을 땄다. 모차르트 사후에 쾨헬이 그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붙여둔 것이다. 정식으로 번호가 붙은 모차르트의 작품은 총 626곡으로, 쾨헬 번호 1번(K.1)은 모차르트가 만 5세 때 썼다고 알려진 피아노 소품이다.       


-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뮤지컬 프리:뷰-공연을 말하다>를 통해서도 뮤지컬 스토리텔링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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