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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속도

무작정 내달리던 삶에 제동을 걸었다. 내 속도대로 묵묵히 가보기로 했다.

걸음걸이에도 사람마다 개성이 있다. 누구는 터벅터벅, 또 다른 누군가는 총총총, 어떤 이는 스르륵스르륵, 뒤뚱뒤뚱, 팔랑팔랑. 다들 자기만의 리듬과 각도, 속도에 맞게 걷는다.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지만 “나야” 하는 낯익은 목소리에 금세 누군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거리에서 걸음걸이만 보고도 그 사람인 걸 알아챌 때면 기분이 좋다. 걷는 모양새를 기억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는 걸 확인한 것 같아서.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메신저로 회사나 상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저벅저벅, 뒤통수 뒤로 들리는 익숙한 상사의 발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서둘러 대화창을 내린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걷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인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아무래도 난 좀 헐렁헐렁하게 걷는 것 같다. 느린 걸음, 힘을 툭 빼고 무심히 땅에 내려놓는 발, 오른발보다 약간 더 바깥쪽으로 향한 왼쪽의 각도. 이런 특징들을 종합해 보면 그렇다. 의식적으로 뚜벅뚜벅 걸어 보려 해도 불편하기만 하다. 별 신경 쓰지 않고 익숙하게 헐렁헐렁, 그냥 그렇게 걷는 게 편하다.


혼자 걸을 때야 내가 걷고 싶은 대로 헐렁헐렁 천천히 걸으면 되는데, 문제는 함께 걸을 때다. 다른 사람의 빠른 속도에 맞추려고 끌려가듯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걷다 보면 걸음걸이도 영 어색해지고 밤이 되면 다리가 욱신거린다. 반대로 나보다 느린 속도에 맞추기 위해 더 느리게, 슬금슬금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대화도 왠지 늘어지는 것 같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자기만의 속도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남들이 나를 제치고 빠르게 지나쳐도 조급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야 할 땐 어느 정도까지 속도를 양보해야 다리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지 알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속도와 자세가 있다.


걸을 때, 여행을 할 때, 집안일을 할 때, 글을 쓸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익숙한 일을 할 때, 목표한 일을 해 나갈 때. 자기 속도를 모르고 무작정 남의 속도를 따라가면 경험상 그 여정은 즐겁지 않았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왔다. 나는 걸음은 느리지만, 목표한 일을 해 나갈 때만큼은 속도가 빨랐다. 무작정 속도를 높였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적당한 속도를 몰라서였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조건 내달렸다. 열심히 하는 건 곧 남들과의 속도 경쟁에서 이기는 걸 의미하는 줄 알았으니까.


마음이 달리는 속도는 늘 일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항상 조바심이 났다. 더 빨리, 더 열심히 해야 돼. 더 잘 해야 돼. 나보다 속도가 느린 사람을 볼 때면 내 열정의 크기도 그 사람보다 크다고 생각하며 자만했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늘 좋은 건 아니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나는 쉽게 지쳐 쓰러졌다. 몇 번이고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동안 나보다 느리게 가던 사람이 오히려 나를 앞서 나가기도 했다. 느리다고 해서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느린 게 아니라 자기 모습을 유지하며 갈 수 있는 자기만의 속도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무작정 빠르게 내달리던 내 삶에 제동을 걸었다. 내 속도대로 묵묵히 가 보기로 했다.


내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는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다. 걷는 속도를 파악할 때처럼 남들과 비교해 봐야 한다. 대신 이젠 앞서가는 사람보다 뒤처졌다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처진 사람보다 앞선다고 우쭐하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떤 속도에서 내가 편안한지 발견해야 하니까. 걸을 때는 헐렁헐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팔랑팔랑, 글을 쓸 땐 쪼르르르, 그림을 그릴 땐 어슬렁어슬렁. 그렇게 차근차근 내 속도를 발견하고 나만의 여정을 즐겨 보려 한다.




[신간 에세이]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출간 기념 연재였습니다.


다음 글,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9화. 폼 좀 잡고 살자

12/8(토)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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