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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r 02. 2024

이혼일기(54)

가사조사서

아이는 아직도 종종 롯데월드 갔다온 이야기를 한다. 그 때 사온 풍선은 바람이 다 빠져 다용도실에 찌그러져 있지만 가다오다 풍선이 눈에 걸릴 때마다,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과정이 험난했어도 어쨌든, 나는 우리 아기를 위해 애썼다.


아기에게는 재밌는 놀이동산이라는 조각이 하나 얹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조사관아저씨를 만났던 일 따위는 롯데월드에 가려져서 모두 날아가버렸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여전히 감기는 낫지 않아 골골거리며 회사를 다녔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척 하며 출근을 하는 게 고달팠지만, 아픈 데 공부를 해야했던 때 보다는 백만배 낫다. 아픈 몸을 끌고라도 아무튼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쓰러질 것 같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다보면 시간은 가고, 가끔 긴급한 상황이나 몰두해야할 일이 생기면 참 신기하게 아픈 것도 순간 잊어버리기도 하고. 내가 골골 거리는 순간에도 아무튼 월급은 나오고 있고 그러지 않은가.


 내 지금의 모든 힘듦은 다아 수험생활과 비교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 때는 못 견디게 괴로웠는데, 건너고 나니 이렇게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건넜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롭지만 지나고 나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지나야 한다. 어떻게든 잘 견디고 지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야를 멀리 두어야 한다.


지금의 남루함이 아닌 훗날의 반짝임을 그리며 눈을 조금 멀리 두자. 그렇게 되어 있을 거야.


다짐하며 근근이 버티는 중에 변호사사무실에서 문자가 왔다.


[ 가사조사서 보내드립니다.

다음 변론기일은 3월 00일입니다. ]


내 사건을 맡았던 조사관은 이 사건을 끝으로 가사조사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짓고 보고서를 쓰겠다고 했었다. 그 말에서 왠지 모를 삶의 지루함과 고달픔이 느껴졌다. 시시콜콜한 부부들의 감정싸움들을 들으며 사는 것도 못할 짓이겠구나. 상담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했을 이 사람도 여기저기 떠돌이처럼 안정적인, 혹은 지속할만한 직업을 찾아 다니고 있겠구나.. 하는 연민이 나도 모르게 들길래,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내가 남 일에 그렇게 이입할 때가 아니다. 에너지를 아껴야지. 빠져나오자.


.

.

.


변호사사무실에서 온 메일을 열어보는 것은 매번 어렵다. 여러번 생각하기보다 그냥 휘리릭 정신없을 때 해치워 버리는 것이 제일 좋았다. 딸각거리는 마우스 소리를 들으며 메일을 열고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훑어보다가, 사진들에 눈이 갔다.


아이가 어색하고 힘들 때 짓는 표정. 혀를 잔뜩 아랫 입술과 이빨 사이로 밀어넣은 그 표정으로 뚱하게 있는데.... 언제나처럼 풀메이크업을 한 할머니와 이모할머니 둘이 미스코리아 미소를 활짝 웃으며 끌어안고 있었다.


아니, 이 할머니들이 지금, 저 장단에 저러고 춤을 추고 있네...?!


다음 사진에서는, 무슨 장난감을 들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돌쟁이때 가지고 놀았던 망치 놀이이다. 조사관이 왔다고, 장난감이라고 꺼내놓은 것이 연령도 맞지 않는 저 따위인 것도 화가 나는데. 어색하고 마음이 힘드니 그거라도 들고 있는 우리 딸 정말 너무 가엾고. 그 뒤로 또 그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여서.


정말 어질어질했다. 살면서 이만큼의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읽어내려가본다


남편은, 어떻게든 아이를 자기가 키울 것이라고 썼다.


원고는 국가직 공무원이라 전국을 떠돌 것이고....... 신경질적이고 변덕이 심해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우지 못할 것입니다..


와... 나 정말. 이제 더이상은 참을 이유도 없고 참을 능력도 없다..


새끼있는 동물은 건드리는 게 아닌데 말야. 내 이것들을 아작아작 씹어버리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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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화내는 게 어려운 유형이에요. 이게 화를 내도 되는 타이밍인지 상황인지 분간이 잘 안가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기회를 놓치곤 합니다.


근데 저 때는 정말 안되겠더라구요.


사실 어머니와 함께 계시며 그 성질 다 받아내시는 이모님께는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저에게는  입바른 소리 끊임없이 하시는 어쨌든 시어른이지만) 아이를 예뻐해주시기도 했고, 아이도 할머니댁 갔다오면 항상 이모함미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도 소송하고 나서도 생신이나 어버이날에는 용돈도 보내고 했는데... 근데 거기 할머니 둘이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눈이 뒤집어졌어요.


모두 다아, 지난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도 그리고 내일 밤도 저와 제 아이가 온전히 날 수 있기를 기도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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