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 나에게로 가는 시간-33년을 건너온 육아일기
33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와 육아일기를 펼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연재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하는 여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일터에서 분투하는 여성으로 살았던 날들, 돌아보니 결과는 늘 마음 같지 않았고 도처에 미숙함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먼지 쌓인 일기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치열했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관통하는 주제는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시대와의 대립과 화해였다.
임신초기인 1992년부터 출산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1993년의 육아편의 이야기는 생명의 품은 가치와 아기가 얼마나 신기하고 위대한 존재인지에 대한 이야기여서 비교적 따뜻한 글이었다. 다만, 좀 까칠한 젊은 엄마의 시대분석과 내면의 갈등이 자주 보인다는 점만 빼고는 개인적인 가정생활과 경제생활도 그 당시 중산층의 평균적인 삶의 방식이여서 특별할 것도 없다.
그 이후로 육아의 출발은 가정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을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와의 분리는 어불성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실패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겠지만, 그 뒤에는 당시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했던 부당한 무게가 분명히 자리했다. 아기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20여년 동안 흔들리고 좌충우돌했던 개인사가 오롯이 개인만의 문제일리가! 한국사회가 걸어온 거시적 담론이나 시대정신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저항하고 화해하면서 살아 온 개인이기에 나의 육아이야기는 시대와 맞물려 왔다. 그때는 잘 몰랐던 것들이 시간을 건너 온 사람에게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마치 면도날로 베인 것 같은 날카로운 아픔도 있고, 미숙했지만 그래도 잘 견뎌낸 준 내가 기특한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사적인 육아일기가 감히 시대를 담아낼 수 있을까? 천둥벌거숭이처럼 이리뛰고 저리뛰며 날뛰던, 지혜롭다고 할 수 없었던 한 여성의 육아일기가 가당키나 할까? 승자의 메시지도 아니고 명분이 있는 패자의 메시지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 속해 있을 그러나 양적으로는 제일 많은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믿으면서 용기를 냈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시대를 담아냈다는 위로가 필요하다. 한 시대를 앞에서 이끈 승자나 처참히 깨져 명확한 모순을 드러내는 패자의 위치는 아니지만 어쩌다 정의롭고 소심하게 비겁했던 평범한 우리가, 어떻게 시대를 관통했는지 말하고 싶었다. 당연히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이니 내가 잘 알고, 그런 내 모습 어딘가에서 각자의 모습을 보고 공감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거나 아니면 ‘그럴 수 있지’라는 허락만 받아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거다.
처음엔 몰랐는데 육아일기를 시대별로 정리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짚어내다보니,
개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강제(?) 정리시켰다.
'나에게로 가는 시간'이라는 육아에세이를 쓰는 동안,
처음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내 과거가 정리되면서 마치 참회록 같은 글이 되기도 했다.
일기 속의 나를 마주하며, 자책과 후회 대신 따뜻한 화해를 건네려 했다.
이 뒤늦은 손길이 과거의 나에게 너무 늦지 않게 닿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적어 나갔다.
사실, 나란 사람은 상처나 후회가 별로 없는 편이다.
실제로 불행이나 시련이 없었다기 보다는 어떤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과거를 되짚어 보는 일은 힘든 점이 많았다. 육아로 인해 많은 걸 포기해야 하고, 때론 늦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라는 과정이 없었으면 보지 못했을 아찔한 진짜가 거기 있었다.
어영부영 묻어둘 뻔한 내 잘못된 과거를 들쳐내면서 내가 무엇을 회피하며 살았으며,
내 욕망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 나이에만 있는 순수함도 발견했다.
아이의 성장을 따라 나는 어떤 엄마의 모습이었는지 무엇보다 내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정확히 어떤 부분이 아들에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까지 지켜 낸 부모의 책임감은 무엇이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혼자 애쓰고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곁에서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기고 만장해서 저지른 행동들이 벌 받지 않고, 좋은 결과로 돌아 온 것에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좋은 결과란 단연코 아들의 존재다.
아들에게 고맙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와 30년을 넘게 함께 하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덕분에 나를 정확히 알게 해주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까지 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식상한 표현인 줄 알지만, 달리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자식은 나를 정직하게 비쳐주는 거울이다.' 고백하면, 육아일기를 정리하며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이 보고싶어 달려가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잘 살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몇 번은 실제로 안아주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서른이 넘은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나를 더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나의 육아일기는 거창한 승자의 기록은 아닐지라도,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우리들의 가장 뜨거운 증언록이다. 나는 이 기록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시대와 맞물려 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목격했다. 그 여정의 끝에서 만난 아들은, 내가 통과해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빛나는 결과물이다. 나를 돌아보게 했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일깨워준 아들이 있었기에 나의 육아일기는 비로소 '시대를 관통하는 목격담'으로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기록'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 "나에게로 가는 시간" 은 4개월 전 브런치를 처음 하면서 올린 글이여서 부족함이 많았는데도 어디선가 나타난 분들이 댓글도 달아주시고 구독도 해주셔서 제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