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대체 어떤 동네에 온 걸까.
신혼집을 알아보러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난 당연히 아파트에 살자고 했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 낳고 가정 이루고 살려면 ‘직장에서 가까운 아파트가 최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집은 직장에서 돌아와 쉬는 공간이면 좋겠다며 평소 자신이 생각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도심과 가깝지만 높은 건물이 없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다양한 편집샵이 있어서 산책만 해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했다.
그러게, 이게 뭔 소리인가. 일단 높은 건물이 없다면, 어디 시골로 가야 하나. 요즘 높은 건물 없는 곳이 어디 있지?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옆이라도 가야 하나. 그런데 편집샵이 있어야 해. 아니 이런 공간이 있긴 한 걸까. 물론 남편이 결혼 전까지 10년 넘게 사는 동네도 합정이었다. 홍대와 가깝지만 남편이 사는 집 주변은 길 건너편 메세나폴리스 같이 높은 건물이 없었다. 비교적 한적하고 사람 사는 동네 같은 골목길이 있다. 골목마다 소소한 편집샵이 있어 볼거리가 많고 산책만 해도 재미가 있는 그런 동네다. 아마 당인리 발전소 때문에 그 주변은 개발이 제한되어 그럴 것이다. 그럼 남편이 찾는 곳은 개발제한구역이지 않는가. 개발제한구역? 그건 혼자 자취할 때 이야기고 맞벌이 부부가 회사를 다니며 살기에는 개발제한구역보다는 상권이 모여 있는 아파트가 편리하지 않나.
이렇게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우리는 꽤 오랫동안 집을 알아봤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서울 혹은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심지어 결혼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인들 집에도 남편을 데리고 놀러 가기도 했다. ‘이것 봐, 다들 이렇게 잘 살잖아. 어때? 아파트가 편리하지’ 이런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합정, 망원동, 연희동, 성미산 마을, 삼청동, 성북동 그리고 부암동에 집을 보러 나를 데리고 다녔다. 딱히 집을 보지 않아도 주말이면 동네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런 공간이 가진 운치에 대해 설명을 하고는 했다.
남편이 선호하는 동네에 나온 집들 중에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수중에 들고 있는 금액으로 마땅한 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동네에 어울리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지만 그런 집은 가격대가 대체로 맞지 않았다. 다세대 주택들은 오래된 집들이 많았다. 대다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여기저기 수리할 곳이 많이 보였다. 그렇다고 최근에 지은 빌라들은 여유 공간이 없어서 같은 크기임에도 답답해 보였다. ‘봐, 아파트만 한 집이 없잖아. 아파트가 주차장도 잘 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어서 편리하고 집안 구조도 잘 빠지고 말이야.’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도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은 남편을 바라보며 ‘그래 일단 남편이 원하니 한 번 둘러나 보자’ 그랬다. ‘이러다 아파트에 가겠지’ 뭐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을 알아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남편은 부암동에 집이 나왔다며 가보자 했다. 가격이 괜찮아서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며 퇴근하고 바로 봐야 한다고 한다. ‘뭐 얼마나 괜찮길래’ 하며 빌라 주차장에 들어섰다. 오래된 빌라였다. 겉보기에도 많이 낡아있었다. 건물 입구 현판에 86년에 지었다고 되어있다. 내 나이와 비슷하다. 30년이나 된 집인데 보나 마나 수리할 데 많겠다. 안 봐도 뻔하다.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오래된 현관문을 열고 아이가 둘인 부부가 우리를 맞이한다.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외관과 다르게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깨끗하다.
거실에 들어서서 탁 트인 창문 밖을 바라봤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참 따뜻했다. 파란 하늘 아래 북악산과 북한산이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가운데 부암동 특유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흩어 뿌려 놓은 것처럼 있다, 시골 어느 창문에서 본 푸른 산이나 들판만 있는 심심한 풍경이 아니다. 높은 꼭대기 집에서 작은 집들을 내려다보는 그런 풍경도 아니었다. 길게 늘어선 산 위에 가지각색에 작은 집들이 우리 눈높이에 펼쳐져 있었다. 빨간 지붕들이 늘어서 있는 곳은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아, 여기 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미 아파트니 뭐니 이런 거 다 잊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가계약을 하고 그 주에 바로 계약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개발제한구역, 부암동에 살기로 한 것이다.
결국, 남편이 승리했다. 결혼식처럼 말이다. 우리는 결혼식을 운현궁에서 전통혼례로 했다. 결혼식장을 알아보는 것도 집을 알아보는 것과 같았다. 난 당연히 교통 편리하고 음식이 맛있어 하객들도 만족할 만한 가성비 좋은 예식장을 알아봤다. 몇 군데 따라다니던 남편 표정이 썩 내켜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이런 얘기를 한다.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럽다고 한다. 하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건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어쨌든 하잖아.’ 전통혼례를 몇 번 봤는데 하객과 시선이 같고 부담이 없다며 우리도 전통혼례로 하자고 했다. ‘그러니깐, 무대 서는 게 싫어서 지금 전통혼례 하자고.’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나 뭔 소리인가 했다.
남편은 그 특유의 진정성으로 무장한 채 전통혼례 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나를 설득했다. 서양식 예복보다 한복을 입으면 얼마나 편하겠냐며 안 그래도 결혼식도 부담스러운데 딱 붙는 드레스에 구두는 불편하지 않겠냐며. ‘그건 그래.’ 전통혼례를 하면 주례 선생님을 따로 안 불러도 알아서 해주신다고 한다. 얼마나 편해. ‘그건 그래,’ 전통혼례는 축가나 행사 준비 따로 없이 사물놀이 한 판 하면 된단다. 얼마나 편하냐며. ‘또 그건 그래.’ 그렇게 남편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전통혼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식이 6개월 정도 남았지만 우리는 부암동 집에 살림을 먼저 합쳤다. 어차피 둘 다 독립을 해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각자 보증금을 빼서 부암동에 새로 마련한 집에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 도배를 하고 몇 군데 수리도 했다. 남편은 휴가 내기가 마땅하지 않아 이미 이사를 가고 비어있는 집에 나 혼자 도배와 수리하는 것을 보러 부암동에 왔다. 도배하는 분이 다 끝나면 전화를 주겠다며 나가 있으라고 했다. 동네를 둘러보며 산책을 하다 자하문 터널 옆쪽에 위치한 화분이 많은 작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화분들 사이에 우뚝 서 있던 주인에게 차를 한 잔 시키고 앉았다. 주인은 내가 시킨 차 한 잔을 내어주고는 “알아서 마시고 가세요” 하더니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이상한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뭐지, 이 동네 다 이런 건가’, ‘주인이 수줍음이 많아서 손님을 피한 건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을 하며 오후 내내 가게를 지켰다.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주인이 마실 나갔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주인은 나를 보자마자 “아직 안 가셨네요.” 그러더니 여기는 화분을 주로 판다며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셨다. 따뜻한 물을 좀 더 내어 주시고는 또 그렇게 가버렸다. ‘과연 난 어떤 동네에 온 걸까?’
* 중앙일보 <더, 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로 연재 중입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