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화디렉터 Apr 27. 2024

내 시간을 사수하라

10년의 고민 끊어내기

어느덧 10번째 결혼기념일.


결혼 이후 10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자그마치 3650일에 가까운 시간인데. 시간 단위, 단위, 단위로 환산하는 따위 죽어도 안하고 싶지만 괜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려본다. 물론 계산이 나오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어림짐작으로 깨달을 뿐이다.

  



결혼 후 초반 3개월을 바짝 즐기고 난 후에 임신을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임신과 동시에 줄곧 누워있었고 좀비처럼 퀭한 눈빛과 위에 눈물이 흐른 자국만 남긴 채 매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때 나에겐 딱히 인생의 목적이 없었다. 그저 입덧을 조금 견딜만 한 시간이면 침대에서 슬그머니 내려와 바닥에 깔아둔 커다란 교자상 위에다가 1000피스 퍼즐을 맞춰가면서 일상을 버텨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삶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신생아 시절에는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가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썼다. 무엇보다 전적인 모유수유와 등센서가 발달한 아이로 인해 나와 아이의 몸은 출생을 기점으로 완전히 분리되었음에도 차마 떨어지지 못하는 불편한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때조차 따라다니는 수유쿠션이 내 뱃살의 일부가 아닌지, 그 상황에서 수유쿠션에 누워 내 젖을 힘차게 빨아당기는 아기가 내 신체기관은 아닌지, 아기를 낳은 후에도 퀭한 눈빛과 뺨 위를 가로지른 눈물자국 또한 오랫동안 나의 일부였다.




아이가 100일 즈음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문화센터에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아이엄마라는 나와 같은 명함을 가진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그 뒤로 10년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전의 시간들은 매일 저녁 남편의 퇴근시간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같은 일상패턴을 지닌 친구들과 온종일 육아를 함께 하다보니 남편의 퇴근이 늦는 것쯤이야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유일한 고민은 오직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때까지도 내 몸은 만삭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복스럽게 잘 먹고 어느 정도 살집도 있는 몸매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마치 건강의 기준이라도 되는듯 내가 쓰는 시간들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같이 육아를 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더 성장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 세계에 더이상은 안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했다. 목표기간은 1년, 한 달에 1킬로씩 연간 10킬로 정도 감량해보는 것을 목표로.


운동을 시작하고 몸이 가벼워지고 나니 다른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의 미래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하지만 운동과 다이어트를 성공했음에도, 그리고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삶에서 나를 가장 많이 소모시키는 바운더리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한 살에서 열 살이 될 때까지 무려 10년의 시간 동안 주변 상황에 휘둘리고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고 하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처음에는 E성향의 나를 무한히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이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후에 내가 발견한 나는 10년 째 제자리에 서 있는 나,


언제나 가치있는 일을 좇으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나는, 무려 3650일 동안이나 '나도 너처럼 열심히 살아야겠어'만 수 백 번 남발한, 너무나 평범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 해도 그 능력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잘 하는 것 중 한 가지가 마인드 컨트롤이라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스스로를 잔뜩 격려하며 하루하루 별일 없음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슴에는 언제든지 타오를 수 있는 심지가 박혀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든 다시 또 두근거릴 수 있음.




지금까지의 생활패턴에서 조건을 변경해보기로 했다.

내가 세운 새로운 룰이 있다면 '내 시간을 사수하라'


적어도 하루에 두시간 정도는 고요하게 현재에 집중하며 혹은 하루하루를 회고하면서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 첫번째 날로 새벽회고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다음에 벚꽃잎이 다시 흩날릴 때쯤이면 더이상 '내 시간을 사수하라'라는 마음의 다짐이 없어도 내 생활이 유익한 루틴으로 흐르고 있기를 소망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