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 환자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까> 실험

8개월에 걸친 실험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by 안유진


브런치를 떠났다가 돌아온 지 몇 년도 넘은것 같이 느껴진다. 작년 딱 이 때는 정말 지옥같았는데, 키우던 개가 많이 아파 새벽마다 발작을 일으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고 조울증약을 복용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에 어마어마하게 시달리고 있었다. 제일 큰 건 폭식이었고, 책도 단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씨가 마치 스프링 튀어 나가듯 튀어나가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때문에 문장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내가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조차 가끔은 잊을 정도로 건망증이 심해지기도 했고 떨어지는 자존감에 가깝던 친구조차 만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을 버스로 10분이 걸리는 곳에 약속이 있어도, 그 상대가 십년이 넘은 내 친구들이어도 나는 그것조차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4월에 개가 죽었고,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5월부터 8개월 간의 계약직으로 근무를 했다. 그게 딱 마무리되는 시점이 지금, 2021년 2월이다.


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날이 밝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해가 뜨고 창문에서 빛이 새어들어오면 그게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날이 밝는게 괴로웠다. 날이 밝고 당연하다는 듯 남들이 출근하고 일하는 시간에 나는 집에서 멍때리며 있는 게 비참했다. 무기력한 내가 혐오스러웠다.

나는 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은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규칙적인 생활은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 더이상 날이 밝는다는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고, 복잡한 출퇴근 길에 섞여가며 비참함도 많이 줄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고 출근을 했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아야하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 나름의 일종의 자기방어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랑 상근을 했던 언니는 어느정도 내 상황을 알았지만, 비상근 근무자였던 나머지들은 나의 병을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애들은 모르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출퇴근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평일에라도 가족들과 떨어져있다는 것도, 나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통합 세시간의 출퇴근 시간 동안 나는 운동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과 섞여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작됐다.

나는 리더에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상근이라는 이유로 나머지를 '리드'해야하는 역할을 얼결에 떠맡게 되었는데, 문제는 나머지가 나를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지쳐갔다. 내가 처음 지고 있던 책임감은 점점 내 스스로 떨쳐내버리게 되었고 그 자리에는 사람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채워졌다. 내 불안증은 다시 시작됐다. 나는 상근이지만 어느순간부터는 극심한 불안장애로 며칠동안 출근을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날 믿고 일을 주셨던 교수님과의 관계도, 끝이 나버렸다.


내가 8개월동안 느낀 바로는 물론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하루의 절반 이상은 집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계약직이었고 폐쇄적인 그 집단의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일 자체는 재미있어서 아쉬움이 더 크다. 차라리 일만 했으면 불안증이 심해지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설 명절 전에는 정말 다 끝이 난다. 작년은 어찌됐든 일한 덕분에 여러가지로 버틸 수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조울병 환자가 정상인(확실하진 않지만) 틈에서 근무가 가능할까 정말 걱정 많이 했는데,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아메리칸 싸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