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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May 20. 2017

메갈 티를 입기 위해서

날이 상당히 더워졌고, 여기저기에서 받은 단체티셔츠나 후원티셔츠를 입을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나는 저번 주부터는 작년에 김자연 성우의 일로 화제가 되었던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곤 한다. 그리고 네이비색으로 살 걸, 핑크색으로 산 것을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다.

모델분 핏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문제는 평소에 화장도 전혀 안 하고, 심지어는 때로 머리도 잘 안 감고(드라이샴푸 나의 사랑 나의 운명) 출근하는 게으름뱅이지만 이 티셔츠를 입을 때면 하다못해 쿠션질이라도 조금은 해야지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그 문제다. 나는 '못생긴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이 두렵다.
 
페미니즘 메시지가 담겨 있는 크롭탑을 사고 싶은데 최근 살이 너무 쪄서(사실 내가 살이 너무 쪘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흔히 여성들이 자신의 몸무게를 더 예민하게 인식하는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162cm에 55kg, 지극히 정상적인 몸무게의 소유자다.) 크롭탑을 살 수가 없다고 친구에게 투덜거리자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여성 억압 때문에 페미니즘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를 못 입는 거냐고. 나는 낄낄대면서 “그래! 나는 외모지상주의의 노예야! 쓰레기야!” 라고 대답했지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신논현역에서 열린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집회에 갔을 때, 전국디바협회 대표이신 분이 무대 위에 나온 걸 보고 감탄했다. 아름다웠다. 그녀는 숏컷에 검은 립스틱이 멋지게 어울렸고, 나는 덕분에 미적 행동이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걸 다시금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저런 멋진 차림이라고 해도 ‘여성혐오적’ 시선 앞에서는 기껏해야 ‘못생겼다’, ‘줘도 안 먹는다’, ‘쿵쾅이’ 같은 말들로 폄하될 것을 알고 있다.
 
일베에 사진이 올라갔을 때 댓글을 보면서 아주 저열한 욕망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되돌아 봤다. ‘A컵 김치년’, ‘못생겼다’, ‘참하게 생겼다’, ‘줘도 안 먹는다’, ‘주절먹’, ‘좀비냐’, ‘저런 년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근심이 많노’. 외모에 대해 논하는 댓글들은 다양했지만 그 와중에 나는 자꾸만 나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너희가 모르겠지만 나는 가슴도 크고 피부도 좋고 다리도 예뻐,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매력적인 여성의 기준’에 부합한단 말이야! 어떤 의미에선 사진이 털린 것보다도 그 욕망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저렇게 생겼으니 (억압이 많아서) 똑똑해졌지’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이것이 오랜 기간 거래대상으로 살아온 여성이라는 인간 종의 자기 검열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외모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내 삶의 다른 부분들을 결정하는 척도가 결코 아니다. 나는 예쁘지 않아도 좋은 소설가일 수 있고, 예쁘지 않아도 훌륭하게 정치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며, 내가 좋은 소설가라면 설령 못생긴 소설가라고 해도 그것이 내 삶의 가치를 깎아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계속 생각한다. 예쁘고 똑똑한, 예쁘고 잘 쓰는, 하여간에 예쁘면서 동시에 훌륭한 무엇이 되고 싶다고. 여성에게 예쁘지 않다는 비난이 어떤 형태로 다가서는지 아주 잘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넌 못생겼으니까 공부 잘 해야겠다’ 같은 되도 않은 농담을 어릴 때부터 접해오지 않았던가. 아니, 꼭 그런 농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쁜 여성과 예쁘지 않은 여성을 갈라치는 과정이, 예쁜 여성을 향해서는 “얼굴도 예쁜데 대단하네” 라는 시선들이 온 세상에 팽배한데.
 
특히 ‘예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 앞에서는 더 많이 주저하고 자기혐오를 느끼게 된다. “역시 저렇게 생긴 년들이 페미질 하지” 같은 비난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비난이라고 생각하고 코웃음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진다. 페미니즘은 못생겨서 하는 게 아닌데. 나 때문에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못생긴” 사람이라고 일반화 되면 어떻게 하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페미니스트도 사회적 기준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편견을 깬 것에 환호하면서, 나는 그녀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못생겼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못생기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솔직한 욕망으로 나는 예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더욱 솔직한 욕망으로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칠 수 있으면, 매일같이 생각한다. 메갈 티셔츠를 입으면서 불안해하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화장품을 찍어바른다. 어디에서 ‘메갈년’이라고 몰카를 찍혀도 ‘저렇게 생겼으니까 페미년이지’ 라는 말을 듣지 않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화장을 하건 성형을 하건 다이어트를 하건 뭘 어떻게 해도 따라다닐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오늘 다시 메갈 티셔츠를 입고 출근을 할 생각인데, 아마 오늘도 가벼운 화장을 하겠다는 욕망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다가 ‘살 쪄서 못 사겠다고 했던’ 그 크롭탑을 그냥 주문해 버렸다. 아마 살은 안 빠질 것 같고, 나는 여름 내내 이 옷을 55kg의 몸무게로 입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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