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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Nov 08. 2021

집이란 무엇인가

공선옥의『춥고 더운 우리 집』


#고향


부모님은 서울토박인데 나는 남들의 고향이 부러웠다. 명절 때 시골에 다녀온 친구들이 할머니 집 나무에서 딴 대추나 밤을 꺼내놓으면 세련된 내 엄마가 만들어준 설탕 잔뜩 묻은 도넛의 기름진 맛 따위 다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그들의 고향,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들 부모의 고향을 상상해보며 정다운 시골을 동경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시골이라는 곳에서 잠시 살았던 기억은 어찌나 소중한지. 사택 안으로 뱀이 들어왔던 어떤 여름날의 서늘함과 한옥집 주인아저씨가 까준 갓 낳은 달걀 노른자의 선명함이 내 속에 남아있다. 예쁜 화단이 있던 서울 변두리 우리 집을 고향이라고 정해놓고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잎이 떨어지거나 장미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담벼락을 지날 때면 아스라한 추억을 간신히 끌어와 허전함을 채운다. 궁색한 서울 사람 어른이 된 나는 시골 출신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고향집 엄마의 손맛 자랑을 들으면 괜히 심통이 나가지고 숲 속의 공주니 뭐니 하는 별명으로 그들을 놀렸다. 그러면서 내심 그들의 다정하고 소박한 엄마의 두툼한 손길을 떠올려보는 거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양 꽃들을 애지중지 돌보면서도 나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쌀쌀했던 나의 젊은 엄마를 밀어내면서 말이다.



#곡성


전국의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흘러 다닌 건 고향이 없는 나의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섬진강을 처음 만났을 때 전생이 있다면 이 곳이 내 고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굽이지는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빛에 마음을 담그고 구름이 내려앉은 물 위로 날아드는 하얀 새가 되어 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다.

자전거여행을 하다 처음 길을 잃었던 날,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불빛이 가까이 다가와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얼어붙은 어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추운 그 밤에 나는 그 불빛의 끝인 곡성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쉬었다. 이듬해 가을에 그 길을 다시 찾았을 때 오래된 묘지가 쭉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길 바닥 위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이제 종종 그리운 섬진강으로 달려가서 해질녘이 되면 곡성에 어느 허름한 여관을 스윽 찾아 들어간다. 고향에 숨어들어온 귀향자처럼.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곡성에서 밤을 맞고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을 따라 구례로 향한다. 여관집 주인과 편의점 직원 외에는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조차 없지만 곡성은 늘 나를 잘 보내준다. 섬진강 위로 흐르는 아침 안개처럼 잔잔하게. 이제 나는 곡성으로 들어가는 길과 산 아래 옹기종이 모인 작은 마을들과 사이사이 너른 논밭이 친근하다. 양지바른 언덕 아래에 집이라도 하나 보이면, ‘이 담에 저런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자전거 타고 섬진강이랑 놀면서.’ 이런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지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공선옥 작가의 『춥고 더운 우리 집』을 펼치고 나는 깜짝 놀랐다.


헐벗은 산천, 버림받거나 잊혀진 세상의 오지. 그것이 내 고향의 일면이기도 하다.1


내가 좋아하는 곡성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그녀의 집


공선옥은 북향집에서 태어났다. “먹을 것이라곤 없는 세상에 나오는 것이 얼매나 고달팠는가 엄마 가슴을 오독오독 쥐어뜯었다는 말에 죄 짓고 숨은 것처럼 늘 후미진 곳에서 쪼그리고 놀았다”고. 축축하고 퍽퍽하게 살았다가 구렁이가 달걀을 깨물어 먹는 것에 화가 난 아버지가 남의 땅에 시멘트로 급하게 부로꾸집을 지었다는데 그녀는 그 집이 그렇게도 미웠단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 집도 표정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집이 말도 한다. 집은 웃는다. 집은 울기도 한다. …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집이 내게는 얼마나 미운 집이고 미운 만큼 얼마나, 얼마나 정다운 집인지. … 동네에서 활발하지 못하고 숨소리를 되도록 줄이고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그 느낌은 아주 고약한 것이었다. … 나는 들창문을 통해 세상을 엿보았던 것이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숨죽이고 엿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은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한 부로꾸집에서 나는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 부로꾸집 들창문을 열고 겁쟁이처럼 세상을 그저 빠꼼히 내다보며 겨우겨우 살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일의 불안함을 잔뜩 안고서.2


후에 근10년 객지로 돌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그 동안 배운 실력으로 이상한 집을 지었다. 오르막 골목의 아래쪽에 있어서 온 동네 하수가 다 쏟아지는 집. 부엌 아궁이에 비만 오면 가득 물이 찼다. 당시 중학생이던 공선옥은 밤잠 안자고 신 새벽에 물을 퍼냈고, 물이 고이는 동안 책을 읽었다.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 밤, 식구들이 서울 외갓집에 가고 혼자의 자유를 누리던 그 날밤, 소식 없이 집에 들른 아버지는 다리에 괴양이 나서 끙끙 앓아 누운 그 밤. 


나는 스탠드 불을 이불 속으로 끌어와 숨기고 밤새워 무슨 글인지, 하여간 내 최초의 소설을 썼다. 선풍기도 없던 그 후덥지근한 여름밤에 서러운 기운에 가득 차서.3



#객지


우리는 장미넝쿨이 예쁘던 마당을 버리고, 하얀 털이 귀엽던 강아지도 누군가에게 줘 버리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는 늘 시름시름 했다. 집 앞으로는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다녔고 창 밖 아래 까마득한 땅을 내려다보는 것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문을 열쇠로 잠그고 외출한 엄마를 기다렸다. 차가운 아파트 복도에서 가방을 깔고 쪼그리고 앉아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지 조금씩 배웠다. 어느 날에는 집 앞 도로 위에 그 많던 차들이 사라지고 커다란 태극기를 마주잡고 언니 오빠들이 가득히 지나가는 것을 내려다 보았다. 아버지는 뜨거운 나라로 오랫동안 일하러 가셨다. 내가 내 집을 미워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그 시절에 공선옥 작가는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그 집으로 들어서기 전 골목 입구에서부터 나는 문득, 내가 이제부터 흙 밟을 일이 별로 없겠구나, 느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였다. 이미 나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대의 완력이 내게까지 미쳤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완력이 작동하는 컨테이어에 실린 나약한 시골아이였다. … 떠나지 않고도, 제 난 곳에서 살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세상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4


우리가 또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느라 한강을 건널 즈음, 공선옥은 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아가씨들이 용변을 보는 화장실 한 옆에서 목욕을 하고 아침이면 예배 같은 화장을 하는 기숙사 방에서 객지 생활을 시작한다.


겨울의 초입에 서울에 와서 그곳 공장과 기숙사 방에서만 한겨울을 다 보내고 난 어느날 아침 아, 봄이구나, 봄이 왔구나, 느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울음이 목구멍 끝까지 꾸역꾸역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울음을 참아낼 수 없음을 감지했을 때, 식당에 내려가지 않고 짐을 꾸렸다. … 절대로 울지 않아야 할 만큼 울음으로 꽉 차있던 그 아가씨들은. 기숙사방 같은 이 매정한 세상을 어떻게 견디고들 살고 있을까.5



#이사


엄마는 결혼하고 쉴 새 없이 이사를 다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월급쟁이 아버지의 뻔한 수입으로 아파트를 옮겨가며 노후를 든든하게 만든 것이 팔순이 넘은 노모의 큰 자랑이다. 그렇게 집 값을 올려놓은 시대의 덕을 왜 나는 누리지 못했을까. 뻔한 월급쟁이와 결혼하고 나도 월급 받으려고 기를 쓰고 일하고 수도권에 작은 아파트에 간신히 내 집을 만드느라 시집살이도 불사했고 이사를 많이도 다녔는데. 나는 늘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애증을 반복하며 고향은 만들어 보지도 못했다. 엄마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내 뒤통수에 대고 넘어진다, 위험하다, 그만 타라 잔소리를 한다.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나도 공선옥 작가처럼 자주 묻는다.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6 


그녀의 엄마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작가로 살아가는 공선옥은 혼자 떠돌았단다. 어디 가서 명실상부한 ‘내 인생의 밥 한 끼’를 먹고 이 세상의 바람 맞아 허기진 영혼을 채울지, 젊은 아버지의 ‘밥 묵자아’는 소리와 엄마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꿈 속에서만 보면서 말이다. 고향을 가진 그녀는 엄마가 그립고 아파트에 갇힌 엄마를 돌보는 나는 없는 고향을 부러워한다.



#우리 집


어느 날 아침,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짐들을 끌고 이동할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느낀 공선옥은 결심을 한다. “이제 그만 떠돌아야겠다!” 그녀의 표현대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나도 이제 집을 지을 때가 되었다! 집이란 곳은 떠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돌아갈 곳을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7


집주인에게는 오직 돈만 지불하면 되는 편리한 집, 원룸에서 막간의 시간을 보내며 고향 곡성 옆 단양에 운명처럼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한다. 


돈만 지불하면 집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가볍고 좋은 시절'은 가고 집이란 거대한 물건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모든 소유는 그토록 무겁다.8 


그리고 나는 그녀의 책 속에서 집이란 무엇인지 읽어낸다. 집과 함께 늙어가고,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아 시간의 더께가 받쳐주는 집을 구경한다. 집을 지어가는 그녀의 사연을 읽고 배운다.


겨울 햇빛이라고 해서 다 반가운 것이 아님을 나는 집을 지어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햇빛의 날카로움보다는 박명의 어둑시근함을 가두고 싶어서라도 집을 짓는 것이다. 직접적인 것보다는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서 말이다. 햇빛과 바람으로부터도, 사람으로부터도 이만큼씩, 혹은 저 만큼씩의 사이를 두고 싶어서.9


그녀는 집을 지어놓고 손볼 곳이 많아 낑낑거린다. 그러다가도 딱 뿌린 만큼 올라오는 씨앗의 천둥 같은 기쁨에 노심초사한 마음은 잊어버린다. 돈 없고 정만 많은 사람들을 이웃으로 끼고 사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근본 없는 나의 고향 시샘을 달래본다.


춥고 더운 집 때문에 서러운 적 없이 살아온 내가 그리워한 것은 시골에 있는 집이었나, 내 등을 쓰다듬어줄 따뜻한 손바닥이었나. 거칠어진 손바닥이라도 문질문질 보듬는 사랑은 도시에나 시골에나 어디든 사람 사는 집, 그 지붕아래 있을 것인데 나는 어디 가서 그 온기를 더듬더듬 찾으려 했던 것인지.

이제 손바닥 아래 사랑으로 내 둥지 안 자식들을 쓰다듬을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 영혼의 허기짐을 채울 고향이 아니라 누군가의 허기짐을 돌봐야 할 시간이구나. 나는 아파트 한 칸 우리 집에서 밥을 짓고 글을 쓰며 고향을 만드는 중이다. 아파트 창 밖 은행나무에도 은행이 노랗게 열렸다.



*<월간길벗> 11월호 [책 읽는 라이더]






1 공선옥. 춥고 더운 우리 집. 한겨레출판. 8쪽


2 같은 책 31, 34


3 같은 책 227.


4 같은 책 47.


5 같은 책 62.


6 같은 책. 79.


7 같은 책. 96.


8 같은 책 99.


9 같은 책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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