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Dec 07. 2022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 영화 <올빼미> 리뷰

무엇이 보이십니까?

영화 <올빼미> 리뷰


대략적인 올빼미의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며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하여 폭주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로 인해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경수(류준열 배우)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면서 영화 <올빼미>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 나오듯, 살다 보면 현실에서도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 되는', '봐도 못 본 척하는 것이 도움 되는' 순간들이 많은데, 먼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해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20대 초반 시절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테면 '나만의 주관을 갖는 법',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기르는 것' 같은 것들이었다. 그건 아마도 타고난 나의 기질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작가라는 꿈을 가졌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작가라면 으레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써야'하는 사람 아닌가! 무언가를 쓰려면 일단 '뭐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보통 작가의 관점 및 남다른 시선으로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친구 및 지인, '어른으로 보이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하곤 했었다.


어른에게 :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요?", "삶의 목적은 어떤 것으로 두어야 하는가요?"

친구에게 : "네가 꿈꾸는 삶은 뭐야?", "행복이란 뭐라고 생각해?",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뭐야?"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시야가 넓어져, 내가 어렸을 때부터 꽤나 '보이지 않는 가치' 그리고 '내면세계'에 저~엉~말 관심이 많았었구나 느끼지만 20대 초반엔 지금보다 훨씬 어렸기에 누구나 다 나와 같을 줄 알고 저렇게 묻고 다닌 것이다.


그랬기에 때때로 갑작스러운 심오한 질문에 당혹감을 느낀 어른 및 친구에게는 알게 모를 미움을 많이 사기도 했고, 그런 고민을 하느라 '떡볶이 쌀떡? 밀떡?', '어떤 치킨 좋아해?' 같은 질문에는 잘 답하지 못해 또래문화에 잘 섞이지 못할 때도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안 났을 수 있다. 그러나 친구들의 대화에 흥미와 재미를 잘 느끼지 못해 나는 자연히 말수가 없는 사람이 되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아재 개그'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질문에는 대답을 잘해주는 이가 많지 않았으므로, 다른 친구의 질문은 내게 재미있지가 않았으므로, 나는 적당한 상식 나누기 토크와 개그 토크를 빙자한 헛소리를 발달시키기 시작했는지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언어유희를 그렇게나 좋아한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좋아했던 결과가 어땠느냐고 물으면, 나는 일단 <올빼미>를 보며 중간중간 지난날의 어둠을 봤던 순간들의 아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서 눈물을 흘렸다고 답할 수 있다.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 <올빼미>의 경수(류준열 배우님)는 이형익이 세자를 독침으로 독살하는,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보게 된다.


나도 그랬던 적이 많다.


회사 생활을 하며 동료들의 이기심, 책임 전가, 거짓말, 그냥 시비 털기 같은 것들을 자주 봤다. 차라리 안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자꾸 보이니 동료들에게 난 성가신 동료가 되었으며, 난 그런 동료들이 싫었다.


그런 걸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스리고 다른 팀원까지 품어주는 동료들이었다면 나의 비극은 없었겠지만, 우린 다 고만고만한 인간이었으므로 서로를 할퀴었다. 그 시절의 난 그냥 도망쳐야 할 순간 같은 것들도 잘 포착하지 못했으므로, 종종 쓸모없어 보이는 정의감, 사명감, 용기 같은 것들로 앞장섰고, 피를 봤다.


나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던 싸움이 보이지 않던 이에게 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나 스스로가 버거웠다. 때론 내가 너무 싫어 스스로를 독살시키기도 했다. 이기지도 못할 격한 음주와 같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말이다. 


내면세계가 보이던 나는 나의 내면세계도 잘 보였으므로, 나의 이기심과 비겁함, 더러움들이 잘 보여서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가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인간미스러운 부분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는 본성 측면의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동료 및 사람들이 나를 눈감아 주는 만큼, 나도 눈감을 부분에 대해서는 눈 감는다. 상사 및 어른에 대한 예의도 조금 터득해나가고 있다. 일반적인 사회규범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섞이려는 노력은 이런 류의 것들이었다.





'내면세계'를 보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을 했지만, 모든 이에게 이 같은 순간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리와 부정 같은 '어둠'이 덮친 순간 말이다. 혹은 인간관계에서의 현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난 이제 어느 정도 세상이 무섭다는 것도 절실히 알아버린 나이이고, 자칫 선의로 내밀었지만 오히려 오지랖이 되어, 중간도 못 가는 행동이 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인류애를 발휘하는 것보단 나와 내 가족의 편의를 챙기는 게 우선인 '보통 인간'이 되었으므로


난 길거리에서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아도 아이고(__) 하면서 눈이 바닥에 붙을 듯 깔고 최대한 솜털 같은 발자국으로 그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난 내식대로 집에 가서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이유> 같은 글을 써서, 그중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다시 펜 대를 잡고 공부할 의욕을 불어넣어 줄, 동기부여 글 한편 정도는 쓸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 처한 '어둠'의 상황이 난 얼마나 버겁고 무서울지 상상도 안 가므로 우리 모두 '눈을 뜨고 제대로 세상을 보고 본 것을 알립시다!!'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어둠을 침묵하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어둠을 '건강하게'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방식의 연마를 위해 실력을 키워가면 어떨까요, 하고는 말해보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결코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한테 "어이 학생!"같은 말은 절대 못 한다. 무서우니까 말이다. 분명하다! 싸우면 내가 질 것이다!


하지만 난 소심하게 이렇게 글로 적어둘 것이다! 혹은 '노담'같은 캠페인을 만들어 마케팅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보였다 생각하겠는가?

앞으로 무엇을 본다 믿겠는가?



난 글의 힘, 그리고 언어의 힘, 그리고 나아가 콘텐츠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가 가진 힘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보기 힘들지만, 결국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한 사람의 내면은 그 사람의 언행을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올빼미>가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어서인지, 오랜만에 사람 북적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어 코로나 이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브런치에도 무비 패스가 다시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적는 영화 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가 뭐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