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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Mar 24. 2020

한파주의보

계간 딩아돌하

한파주의보


네가 머물다 간 며칠이 지나고 내가 깨달은 사실은

세상에 쓰잘데기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


우주는 그렇게까지 넓을 필요가 없다는 것

우리가 끌어안고 있던 여덟 평 반지하방

딱 그만큼이면 충분한 우주의 코어

그 밖의 모든 세상은 과자봉지 속 질소처럼

가볍고 허무한 것들


성부 성자 성령, 믿음 소망 사랑, 하늘 땅 사람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는 언제나 세 조각


우주의 코어에서 우리는

먹고 자고 했나

자고 먹고 했나

하고 자고 먹었나


아무렴 어때

잘 먹고 나면 잘 하고

잘 하고 나면 잘 자고

잘 자고 나면 잘 먹는 것이 순리이니

그 외의 모든 행위는 멋드러지게 자란 나무의

온몸에 칭칭 감아놓은 꼬마전구 주렁주렁 달린 전선일 뿐


농업혁명이 집단노동을 만들었고

산업혁명이 일하는 시간을 강제했고

정보화혁명이 만든 저 빌어먹을 아이폰은 또 울려대고


장대하게 도래할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얘랑 나랑은 그냥 깍두기 하면 안될까요?

조용히 가만히 여기 우주의 은밀한 복판에서 죽은 듯이 살다가 죽어갈게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갈

찬란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얘랑 나랑은 그냥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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