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위안이 되는, 그냥 내 편.
요양병원에서의 자아성찰 및 자각(?) 후, 제주도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 툭하면 울음이 터져나왔다.
처음 본 사람이 보면 나를 이상한 취급을 할 수도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코가 빨갛지.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눈물이 흘러대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서는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청승맞은 아줌마가 아닐 수 없었다.
한번은 언니와 아침을 먹기로 하고 카페에서 만났는데,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서 휴지로 눈을 막고 한참을 있었더랬다. 내가 갑자기 우니까 언니는 당황한 것 같았다. 미안했다. 다시 각자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데 언니한테 문자가 왔다.
”우는 건 미안한 게 아니여~ 언니 앞에서 울어도 돼~~ 아까 안아주고 싶었는데 못 안아줘서 미안해~~~“
나는 답을 했다.
”아냐 언니, 언니가 얼마나 나한테 위안이 되는지 몰라. 너무 고마워.“
우리 언니. 한상 내 편이면서 내 행복을 바라는 우리 언니가 지금 옆에 있었다.
본인도 몸이 안 좋아서 내 방사선을 피해야 하지만, 조심해가며 내가 어려울 시기에 내 옆에 있어주는 우리 언니.
제주도 와서 내내 헤어질 때 나를 내 방까지 데려다주고, 내 숙소 상태를 눈으로 꼭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본인 숙소로 돌아가던 우리 언니.
수술하고 집에서 쉴 때, 동해 바다가 너무 보고싶을 때, 일에 지쳐 본인은 피곤하니 갈 수 없다는 남편 대신 주문진까지 운전해 내게 바다를 보여준 우리 언니.
철철이 비싼 옷을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이건 올해 생일 선물, 이건 내년 어린이날 선물 미리...라고 하며 매번 챙겨준, 그러고도 생색한번 낸적 없는 우리 언니.
우리집에 올 때는 항상 제부 없을떄 불러~하고 내가 부를때만 오고, 양손에 아이들과 나 먹을 과일과 과자를 한아름 들고, 꼭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오던 우리 언니.
내가 갑상선암이 전이, 재발된 이후 누구보다 열심히 자료를 찾고 공부해주고, 주요 내용을 밑줄쳐서 문자로 알려주고, 필요한 책을 선물해 준 우리 언니.
2박 3일의 동위원소 치료 후 7세 이하 아이들은 2주 ”이상“의 격리가 필요하기 떄문에 내가 3주는 떨어져 있어야 함을 이야기 했을떄 나를 놀러가는 사람 취급하며 ‘2주면 충분하지 않아?’하는 남편에게 책으로 자료를 찾아 퇴원일로부터 2주이므로 18일이며, 그건 최소한의 분리기간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 사진으로 찍어 보여준 우리 언니.
내가 동위원소 치료 후 요양병원에 있다가 제주도를 간다고 했을때 남편의 첫마디는 ‘부럽다’ 였는데, 속으로 ‘그럼 네가 암에 걸릴래?’라고 생각했을지언정 동생 부부의 평화를 위해 ‘어머 제부 고마워~~~ (제부 애들이기도 하지만) 아이들 보느라 고생하겠네’라고 이야기해준 우리 언니.
너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