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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9. 2024

14. 부탁을 들어주긴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 어쩐지 내편(?)이 아닌 것 같은 남편.

방사선 치료를 받고, 퇴원 후 전신 요오드스캔이 예정된 그 사이 일주일 동안, 나는 요양병원에 가 있기로 했다. 수술 후 두 달 반이 지난 후라 수술 부위 회복은 어느 정도 되었지만, 방사선 치료 준비로 한 달간 약을 끊고, 저요오드 식단을 하면서 몸이 많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퇴원 후 저요오드식을 2-3일 유지해야 해서 직접 해 먹지 않는 이상 집이 아닌 곳에서는 챙겨 먹기도 힘들겠다 싶었다.

      

남편은 내가 요양병원 가 있는 주말에 시누(여동생)네 집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시누네는 얼마 전 평수를 늘려 이사를 했는데, 우리를 불러 집들이를 꽤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우리 애들을 워낙 좋아하고, (일단 시누 아들은 우리 애들이랑 있으면 너무 신나 엄마를 안 찾았다.) 그전에도 우리가 서울에 놀러 가 연락이 없으면 어쩐지 서운해하는 것 같은 시누였다. 어떨 땐 우리가 서울에 놀러 와있는 주말에 어머님이 친히 남편에게 전화를 하셔서 ㅇㅇ한테 연락해 봐라 하시기도 했다. 이사 후에 내가 일하느라 바쁘고, 거기다 몸까지 안 좋으니 차마 시누네 집들이까지 챙기자고 말하지 못했던 남편은 나 없을 때 본인이 데리고 갔다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누네와 노는 것을 처음에는 저어하지 않았었다. 우리 신혼집에부터 놀러 와서 다 같이 한잔하고 자고 가기도 했다. 남편은 대부분 먼저 자러 들어가고, 나랑 시누만 더 마시기도 했다. 시누와 시누 남편 둘 다 우리 집에서 재운 적도 많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우리가 가서 잔 적도 있다. 그런데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빈도가 높아질수록, 어느 순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너무 불편했다. 항상 시누와 어머님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시누는 아침 일찍부터 꼭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어젯밤엔 자기전까지 뭘 했고, (이미 전날 저녁에 카톡으로 주요 활동에 대해 가족창에 사진을 다 공유한 상태임에도) 지금 오빠는 뭘 하고 언니는 뭘 하고 (주로 방에서 아직 자고 있고...라고 하나 나는 이미 깨서 전화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 애들은 뭘 하고 있으며, 오늘은 뭘 할 거란 계획을 어머님께 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했다. 한 번은 넌지시 말한 적도 있다. 참 어머님이랑 전화 통화를 자주 하는 것 같다고. 신기하다고. 나처럼 엄마랑도 가끔 통화하는 사람한테는. 그래도 여전히 시누는 변함이 없었다. 남편에게도 한번 불편하다 얘기했는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내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럴 수 있겠지만, 다른 얘기들이야 그냥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네가 예민하다. 는 반응이었다.   

   

남편은 시누네서 잔 토요일 밤,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왔는데, 나는 우리 애들이 보고 싶음에도 줄곧 시누 아들과 사누를 비춰주었다.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지?;; 내가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기를 바라는 건가...? 무슨 도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우리 애들이 가서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 고맙다 하고 말았다. 시누도 조금 민망해하며 언니 몸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     



한편 남편이 주말에 서울로 온다고 해서 생각해 보니 시누 집과 내가 있는 요양병원이 차로 오 분 거리로 꽤 가까웠다. 그리고 퇴원 후 제주도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짐을 좀 덜어야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시누네 집에 와 있을 때 잠깐 나 있는 병원에 와서 캐리어를 바꿔줄 수 있겠냐고.     


입원할 때 24인치짜리 큰 캐리어를 가지고 와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좀 더 작은 기내용 캐리어를 가져와서 내가 지금 필요 없는 짐을 정리해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부탁했다.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말이다.


내가 예상한 대답은 ‘그래, 병원이 어딘데?’ (이때까지 남편은 내가 있는 요양병원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내가 혼자 알아서 알아봤고, 종합병원 퇴원 후 입원도 혼자 했기 때문에. 남편도 정확히 어느 병원에 가기로 했냐고 묻지 않았다.) 였으나, 남편의 첫마디는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였다. 시누네 집에서 일정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애들 보느라 자기는 정신이 없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내가 요양병원 위치를 알려주고 꽤 가깝다는 걸 말한 후에야 "아, 그 정도면 갈만 하겠네” 하는 반응이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병원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는 김에 하나 더 부탁을 했다. 어머님이 가지고 계신 내 카드를 좀 가져와 줄 수 있겠냐고.     


예전에 어머님께 드리는 수고비 외에 장 보는 비용 또는 애들 학원비 결제 등에 사용하는 카드로 내 신용카드를 드린 적이 있었다. 원래는 남편 카드로 쓰셨는데, 갑자기 그 카드가 잘 안 되어서 내 카드를 어머님께 임시로 드렸었다. 남편은 재발급해서 드린다고 해 놓고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도 자주 쓰는 카드 두 개 중 하나를 드리고, 다른 카드 하나로만 계속 쓰자니 좀 불편했는데, 굳이 얘기하지 않았었다. 신경 쓰기에는 직장일로 바쁘기도 했다. 남편도 잊고 있었나 보다. 아 자기 카드가 엄마한테 있었어...? 하는 반응이다. 남편에게 어머님이 당분간 애들을 봐주시느라 카드가 계속 필요하시다고 하면 남편의 다른 카드를 좀 드리고, 내 카드는 좀 챙겨 와 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쓸 일이 있을 것 같다는 핑계로. 

               

일요일 아침 남편을 만났다.     


그 전날 밤에도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일반 상가건물을 개조해 만든 병실 입구에는 초록색 비상구 불빛이 환했다. 불을 다 꺼도 항상 켜져 있는 그 불빛 때문에 잠을 잘 잘 수 없었다. 요양병원 원장님은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신지로이드를 다시 먹기 시작하더라도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가 한동안은 오르기 때문에, 호르몬 불균형이 계속되어 수면장애가 이어지고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전화로야 내가 괜찮다고 말하니 그저 괜찮은 줄 알았던 남편은 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컨디션이 안 좋구나 깨달은 눈치였다. 아침을 안 먹고 왔다는 얘기에 빵 두 개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오래간만에 밀크티를 먹는데 밀크티 맛이 희한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미각이 이상해진 게 맞았다. 남편은 그저 집집마다 밀크티 맛이 다를 수도 있지 설마.... 하는 반응이다. 내가 미각을 잃어 지난밤 먹은 와퍼맛이 이상하다고 얘기했는데도 왜 빵을 시켜놓고 안 먹니, 한다. 너 먹으라고 시킨거야. 지금 내가 입맛이 있겠니.


남편과 앉아 이야기하면서 점점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남편은 내게 큰 캐리어로 바꿔서 오늘 아이들과 이동이 힘들겠다는 얘기, 이번달 입금된 작년 성과급이 얼마 들어왔는지, 나는 얼마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이야기, 내 복직시기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뭐랄까..... 기분이 묘했다. 굉장히 자기 위주였다. 캐리어를 바꿔서 오늘 아이들과 일정 중에 본인 힘들겠다는 얘기를 해 내가 괜히 부탁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어쩌라는 거지...?) 작년 성과급이 얼마인지 지금의 나는 궁금하지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얼만지 정확히 모르는 나는 무심한 사람이 되고, (이 상황에 물어보러 회사에 전화라도 해야 하나...?) 내 복직시기를 두고 선심 쓰듯 한 달 반 정도만 더 쉬고 복직하라고 했다가, 진단서가 나와 질병휴직을 연장할 수 있게 되자 (원래 받은 진단서상 안정가료기간 이후 더 쉴 수 없으면 육아휴직이라도 하려고 했다. 육아휴직은 급여가 없다. 질병휴직은 일부 나온다.) 뭔가 애매한 표정으로 알아서 하라고 말을 바꾸는 것도 참 기분이 묘하게 했다.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병실로 올라왔다. 

가지고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내 카드도 다행히(?) 어머님께 이야기하고 가져와줘서 바꾼 캐리어와 함께 가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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