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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Nov 12. 202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정이 넘어가면 나는 앱테크를 위해 여러 은행 어플을 전전한다.

몸에 인이 박힌 이 행위는 여행을 떠나서도 멈출 수가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고작 몇십 원을 모으기 위해 소파에 앉아있자니 돈무새가 따로 없어 보인다. 모아봤자 소소해도 너무 소소해서 벼룩의 간인 것 같지만 이러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10원, 20원씩 모아 벌써 10만 원을 향해 가는 잔고를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여기서 배울 수 있다.


토스에는 행운 복권이란 게 있다.

오늘 이루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원하는 운을 클릭하면 그에 따른 운과 적지만 응원 가득한 행운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친구들은 늘 재물운을 눌렀다.

나는 단 한 번도 성공운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적이 없다.



가늘느리게 흘러가는 삶.

횡재수해서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삶.

아무 신경 쓸 것 없이 책임지지 않고 그냥 나 홀로 편하게 사는 삶.

친구들은 언제나 돈이 많지만 아무도 본인을 모르는 삶을 꿈꾸고 있다. 그냥 돈만 펑펑 쓰고 골치 아픈 일에는 휘말리지 않는 게 좋은 삶인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들 모르게 복권 당첨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순간, 암묵적으로 우리는 같은 삶의 모토를 공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여행의 끝은 항상 복권방에서 마무리됐다.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나는 재물욕보다 명예욕이 더 큰 사람이었다.

굵고 빠르게 흘러가는 삶.

내 개쩌는 능력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삶.

억울한 구설수에 휘말려도 빈지노의 노래처럼 유명인이 내는 세금이라 말하는 쿨할 수 있는 삶.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작년에 친구들과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돈 이야기를 나눴다. 큰 비밀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우리가 같은 모토를 공유하는 척 연기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기회를 틈타서 살며시 고백했다.

한 친구는 매우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내가 본인처럼 인생에 아무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신이 내게 재물과 명예, 둘 중에 하나만을 택하라 한다면 고민 따위 없이 단번에 결정할 수 있다.

후자여, 내게 오라. 너를 맞이할 준비가 됐거늘.


나는 늘 프란츠 카프카와 반 고흐와 비비안 마이어를 생각한다. 위대한 재능을 가지고도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이들.

풍족하게 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름을 알린 천재들에게 궁금한 게 있다.

신이 그들에게 재물과 명예 중 택일을 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나는 명예, 그리고 그에 따른 재물까지 탐내고 있는 탐욕덩어리다. 그래서 심령은 늘 괴롭고 사는 게 지옥 같은가 보다.

이번 여행에서 쇼핑은 안 하고 열심히 먹고만 왔으니 이제는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비워야겠다.

이상 돈이 많아야 즐거울 홍콩에서 갓 돌아와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Photo by fikry ansh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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