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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타임>과 하이데거, 스티븐 호킹

그런데 하이데거의 철학과 스티븐 호킹의 물리학 이론을 곁들인

by 덜 지루한 생활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정말로 아는 것은 무엇이며 우주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주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면 시작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간의 본질은 무엇이고 시간도 언젠가 끝에 도달할까? 그리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을까?

최근(집필 당시인 1988년)에는 새로운 공학 기술과 물리학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이 오랜 질문들 중 일부에 대한 대답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다.

-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 A brief history of time>, Ch. 1 [Our Picture of the Universe], 1988, p.15-16 (까치책방, 2006.03.20, 전대호 역본 참고)


흔히 말하는 로맨스 영화 3대장이 있다. <노트북>, <비포> 시리즈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비포 미드나잇 그리고 <어바웃 타임>까지 호불호가 없는 로맨스 3대 명작이다.


여기서 <어바웃 타임>은 내용 뿐 아니라 촬영 장소, OST를 포함해서 영화 전체가 컨텐츠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어바웃 타임>을 지난 금요일에 드디어 끝까지 다 봤다. 지금까지 10번 정도 시도했다가 늘 초반 10~20분 구간에서 실패했는데 마침 로맨스 영화 특집 모임이 있길래 바로 신청해서 보고 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타임슬립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사실 타임슬립 로맨스물은 1993년에 개봉한 <사랑의 소용돌이>를 비롯해 예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주제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새로운 컨셉의 작품은 아니었다.


로맨스물이 아니라면 타임슬립물의 선택지는 더욱 넓어진다. 대표적으로 1985년 작품 <백 투 더 퓨처>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해 아예 과거와 미래를 맘대로 넘나드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처럼 다양한 곳에서 시간 여행을 다루는 이유는 되돌릴 수 없고 반복되지 않는 시간의 특수성 때문이다. 시간의 속성은 과학적 속성(자연시간)과 철학적 속성(세계시간)으로 나뉜다.


과학적으로 시간은 정의내리기 매우 어렵고 하나로 합의된 이론이 없는 상당히 흥미로운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인 기원전 4세기에 집필한 <자연학 : ἀκροάσεως>에서 시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시간은 운동(변화)의 앞과 뒤(전후)를 기준으로 한 수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 ἀκροάσεως>, BCE 4, 제4권 11장 : Book IV, Chapter 11, 219b1-2

다시 말해서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이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수학적인 단위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의 시간은 나라는 존재가 이동하며 겪는 위치의 변화, 즉 (1) 물리학적인 좌표상의 변화와 (2) 세포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로 이뤄지는 성장과 노화라는 생물학적인 변화 뿐 아니라 (3) 경험이라는 독특한 변수가 맞물려 작용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와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 : Die Grundlage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에서 시공간이 놓인 세계선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리는 물리 법칙의 영향을 받는 세계선(worldline)의 4차원적 시공간에 존재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좌표상의 변화를 겪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간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A부터 B까지 이동한 위치, 높이 등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시간이란 의미다.


또한 우리의 몸도 계속 변화한다. 몸에는 약 36~37조 개의 세포가 있고 수많은 생성, 복제, 소멸을 반복한다. 여기서 약 98%의 세포가 바뀌는데 상피세포는 5일, 적혈구는 120일, 간세포는 2년, 뼈세포는 10년, 마지막으로 근육세포는 16년을 주기로 변한다.


이와 같은 생물학적인 작용으로 키가 자라고 몸이 성장한 것도 시간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 관찰 수단일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BGeGy9OIs3g?si=sx0seZWXVxSyjAuF




과학 못지않게 철학에서도 시간에 대한 많은 탐구와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마르틴 하이데거는 1925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여름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시간 개념 : Der Begriff der Zeit>에서 시간과 존재의 관계성을 정의했으며 2년 뒤인 1927년에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존재와 시간 : Sein und Zeit>을 통해 시간과 존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하이데거에게 시간이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성찰의 문제다. “시계를 보는 것은 시간이 흘렀다는 경과가 아닌 그 행위를 통해 지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인가. 이는 곧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언젠가 미래에 죽음(결과)을 맞이할 것이라 사실은 역설적으로 아직 죽지 않고 지금 살아있다는 의미(원인)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A에서 출발하면 B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에서 기차가 출발해야 B에 기차가 도착할 수 있고 B에 기차가 도착하려면 A에서 기차가 출발해야 한다. 즉 A은 B에 기차가 도착한 원인이 되므로 A가 없으면 B가 성립될 수 없으며 B가 없으면 A 역시 성립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탄생(원인) 없는 죽음(결과)이 성립될 수 없고 죽음(결과) 없는 탄생(원인)이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정황성"은 미래에 죽을 "앞선 거기"를 통해 증명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언젠가 없어질 것을 통해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재는 것, 곧 시계를 보는 것은 바로 미래에 소멸될 앞선 나를 통해서 현재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존재론적인 고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존재적 고찰을 통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어바웃 타임>은 하이데거가 말한 시간의 존재론적 성찰과 시간의 의미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놉시스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모태 솔로인 주인공 팀은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가문의 비밀을 전해 듣는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메리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아쉽게 기회를 놓치고 만다.


팀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시간 여행으로 실수를 바로 잡으며 메리와 가까워진다. 그런데 주변 상황들이 점점 미묘하게 엇갈리기 시작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팀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 여행을 시도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답은 없었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팀은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처음에는 메리라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시간 여행이었다면 여러 사건을 겪으며 가족, 주변을 위해 시간을 여행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다.


가장 첫 시간 여행은 나의 욕구,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시간 여행, 세계를 향한 시간 여행으로 점차 의미가 확장된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계산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한 팀이 찾은 삶의 의미는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매일을 충실히 사는 것이었다. 삶의 여유가 생긴 팀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동료의 어려움에 같이 공감해주며 지긋지긋한 출퇴근길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물론 시간 여행 이전에도 팀은 부정적으로 살거나 타인에게 불친절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에 무관심했을 뿐이다. 너무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해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시간 여행 속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삶과 그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을 통해서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오히려 역설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가 더욱 빛나고 소중하다는 확신을 얻는다.


어떤 사람들은 팀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메리의 환심을 사려고 시간 여행을 통해 얻은 정보로 취미, 취향을 파악해 원하는 대화만 골라서 말하는 것은 운명적 상대가 아니며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도 이전 연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새로운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팀은 누구보다도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은 없다. 비슷한 가치관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대체적인 경향성이 맞는 사람은 있겠지만 모든 생각, 가치가 통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모든 부분이 잘 맞는 운명의 상대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우리의 시야는 좁아진다.


팀처럼 삶을 넓게 보며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한다. 완벽한 사람, 완벽한 사랑, 완벽한 선택, 완벽한 결론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린 불편한 진실을 마주 보아야 한다.


스티븐 호킹의 말처럼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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