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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결점

나는 지금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 앉아 있다.

by 덜 지루한 생활


나는 지금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 앉아 있다. 뜨거운 햇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해서 기분이 좋다. 어디를, 얼마나 걸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쾌청한 날씨다. 원래 몇몇 모임에 나가려고 했는데 어딘가 내키지 않아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무작정 광화문에 왔다. 기대하던 사람과의 약속이 아니라 그런지 전부 귀찮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는 부부, 등산복 차림의 노인,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친구와 전화하고 있는 사람, 휴가 나온 군인과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 친구와 함께 회사 욕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빙빙 도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파란 하늘만 보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혼자 나온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이 속에는 웃음소리와 싸우는 소리, 버스 소리, 피아노 소리,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가 섞여 서로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언젠가 어느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모습을 느슨한 연결점이라고 했다.



서로의 관계에 어떤 의무와 책임도 존재하지 않은 자유로운 관계. 상호 간에 권리, 의무가 조금 얽히고설켜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 그래서 좀처럼 느끼지 못하던 해방감을 느껴서 30분이 넘게 앉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주말에는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크고 자주 든다. 계획된 일정, 약속이 없어도 그냥 나가서 움직이고 무언가를 한다. 어떤 날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인파에 섞여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럴 때면 내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일단 나가서 걷자는 학계에 미보고된 신종 강박증이 생긴 것 같다. 장마 전까지 날이 좋을 테니까 이제 더 자주 나가서 돌아다니겠지…. 다음 주말에는 기대하던 사람과의 약속이 잡혔으면 좋겠다. 혼자도 좋지만, 이 자유를 기대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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