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로서 존중받는 것의 의미
난 <옳음>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옳음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명확하게 있었지만 나이가 한두 살 먹어갈수록 조금씩 불명확해지고 있다. 몇 해 전의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타인은 나와 다른 인격체이고, 그러한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내가 존중하는 만큼 나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였다. 내가 먼저 타인을 존중하면 나도 존중받겠다. 뭐 이러 생각이 너무나 확고하게 있었다. 너무나 확고에서 그러한 의미를 담은 타투도 내 몸에 새겼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이런 생각과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1. 대한민국은 디자이너를 존중하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일을 함에 있어서도, 타인의 생각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했다. 하지만 이 생각이 <디자이너> 에게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몸소 느끼게 되었다. 주니어 때의 디자인은 항상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마련이고 피드백을 듣기 마련이었고, 그런 피드백은 나에게 항상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고, 그저 권위에 찬 갑질 어린 말이더라도 내가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땐 그게 잘못된 피드백이고, 소모적이고, 디자이너의 노동 혹은 권리를 존중하지 못한 말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후에 디자이너로서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일을 함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잘못된 것인지 구분을 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얕은 나의 생각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기준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더 멋있게 만들어오세요"라고 말하고 더 이상의 내용은 생략한 그 대표님의 피드백은 과연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며 건넨 피드백일까? 과연 디자이너로서 존중을 한 걸까? 전혀 아니라는 거지. 나를 존중하지 않거나 혹은 디자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전자이다. 타인이 나를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나 또한 존중할 이유가 없고, 결국 타협해야 할 지점은 일의 효율이다.
2. 디자이너를 존중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 기준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 공적인 관계에서는 적용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디자이너>들에게는 더욱이나 그렇다. 누군가가 말하길, 디자인은 결과물만 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틀렸다. 100% 틀렸다. 디자인은 결과물만 보면 안 된다. <기획 의도>를 함께 봐야 한다. 정말 나의 업무를 그리고 나를 존중한다면 디자인 기획의도, 표현 의도, 생각 등을 모두 고려하며 나에게 피드백을 줘야 한다. 그러한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은 존중의 기반 <내가 틀렸다는 전제>가 없는 것이고, 이것은 존중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정말 나를 존중한다면 "이거 바꾸세요" 보다는 "이거 이렇게 표현하신 의도가 무엇인가요?"가 맞지 않을까? 그러나 여태껏 디자이너로서 살면서 존중이 기반된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은 극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 한 명은 나보다 선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작업물에 항상 기획의도를 먼저 물어보았고, 권위적으로 수정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항상 작업물을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었다. 그리고 아쉬운 부분은 허무맹랑한 요청이 아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의 나의 여자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정말 당연한 것일 테지만 이런 당연한 것에 내가 감동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3. 정말로 타인을 존중하거나,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갖추거나. 혹은 둘 다
제대로 존중이 기반되어야 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완벽한 프로세스를 갖추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 누군가의 입김 때문에, 혹은 클라이언트의 말 한마디 때문에 그런 과정을 생략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이러한 경우가 쌓이고 쌓여 부조리가 되어 썩어 문드러진 문화로 자리 잡힌 회사가 대부분이다. 존중은커녕 사람을 일회용 용기 다루듯 가볍게 다루고, 그렇다고 제대로 프로세스 또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어느 누구 하나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대표라면 두 가지 모두를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람과 일, 두 가지 모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비관적인 맥락이 아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기반이 되었다. 더 나은 환경과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으면 그것을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다. 그게 어떠한 방법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나는 충분히 노력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존중하며 일을 하고 있는가? 에 대한 물음도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걸 알기에 세상에 대한 나의 기대심만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4. "누구세요?" 보다 "반갑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군가를 처음 만나 하는 말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가 아닌 "누구세요?"가 당연한 물음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물어도 별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누구인지 궁금한 것이다. 어느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관계>인지,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 등 누구인지 알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게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관계 속에서의 사람이 아닌 개인대 개인으로서 진정한 존중을 실천하는 것,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관계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