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사업을 시작할 때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가장 중요한 점
며칠 전, 디자인 멘토링을 진행했던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속한 디자이너 그룹에서 조금의 논쟁?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해야 하는지, 다른 부수적인 일도 같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아주 예전에도 이 문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답해보자면, 디자이너가(디자인 사업가가 아닌) 다른 부수적인 일을 같이 하면 좋지만 그것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디자인 시장에 뛰어든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디자인을 접하고 배울 수 있고 또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다룰 줄 알면 바로 디자인 사업자를 내고 시장에 뛰어든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업을 가지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살아가겠다는데 제삼자로서 감히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얘기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디자인 시장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꼭 염두해야 할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디자이너가 디자인 실력과 디자인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신입 디자이너 시절, 편집 디자이너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대표가 내게 캐드 도면을 그려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뭐 이런저런 말들은 다 생략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면 안 돼 다른 것도 해야 돼”라는 말을 했다. 유독 다른 직업보다 디자이너에게는 왜 그렇게 만능 엔터테이너를 바라는지 모를 노릇이다. 디자이너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것도 하고, 요것도 하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라고 한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디자인 실력이다. 최근 채용을 하느라 몇몇 디자인 지원자들을 검토하는데 65명의 지원자 중에서 면접을 본 사람은 단 7명뿐이었다. 디자이너를 뽑아야 하는데, 모두 디자인 실력이 아닌 다른 것을 어필하였다. 회사에서 기획을 배운 점, 마케팅 업무에 참여한 점, 사진 촬영을 담당한 점, 물류 포장과 고객응대를 한 점(당연히 장점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은 디자이너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은 맞다. 하지만 정작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포트폴리오가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이 지원자들이 ‘회사에서 부수적인 일 대신 디자인에 더 집중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다가왔다.
신입시절 스스로 디자인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디자인 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디자이너가 가장 기본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했기에 디자인 공부에 집중했다. 기획도 마케팅도 영업도 영상도 모두 관심 있는 분야였지만 ‘디자인으로 이 정도면 먹고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온전히 디자인에만 집중했다. 중간중간 회사 동료들로부터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면 안 돼 다른 거 다 잘해야 돼"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디자인은 초반에 실력을 올리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도태되는 직업 중에 하나이다. 신입시절 기본기를 닦아 놓지 못한다면 평생 디자인 퀄리티를 올리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디자인이 아닌 다른 부수적인 업무는 디자인을 배운 뒤 도전해도 늦지 않는다. 그 분야가 쉬워서가 아니다. 당연히 우리가 업(job)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건 바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퀄리티와 소양은 갖춘 뒤, 그다음 부수적인 것을 배워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은 1년 차, 2년 차 신입 디자이너들을 뽑아놓고 이제 막 디자인 업계에 뛰어는 초년생들에게 “오너 마인드로 일을 해야 돼, 너도 언젠가 사업할 거잖아”라며 말을 한다.
신입 디자이너들은 이게 잘못된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저 먼 훗날 내가 나의 사업을 시작했을 때 도움이 되겠지 하며 운명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사실 사업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사업을 시작하고 배워도 늦지 않는다. 즉 미리 사서 고생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시작하면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4년 차까진 디자인 퀄리티를 위해 디자인에만 집중했고, 5년 차에는 영업과 기획을 시작한 뒤 7년 차에 나의 사업체를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고도 배울 것이 너무 많았기에 사실 지금도 배워가며 일하고 있다.
대표 마인드란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직원들은 대표가 아니다. 직원은 직원일 뿐이다. 대표는 직원들에게 대표 마인드를 바라지만 대표만큼의 연봉을 주진 않는다. 실제로 나도 현재 4인체제의 디자인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절대 직원들에게 대표 마인드를 바라진 않는다. 만약 함께 일하는 직원이 ‘회사운영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1부터 100까지 영업기밀?을 알려줄 의향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 일을 메인으로, 기획자에게는 기획 일을 메인으로 맡긴다. 외부에 회사소개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회사는 디자이너가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해요’라고 말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포지션에 맞춰 일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똑같다. 나는 퀄리티 있는 디자인을 받아보고 싶은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기획자가 디자인을 한다면? 또 제대로 된 칼럼을 받아보고 싶은데 웹 디자이너가 글을 쓰고 있다면? 나라면 싫다.
그런데 이 부분은 모두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디자인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정말 디자인실력이 좋아서 디자인 사업에 뛰어든 경우, 하나는 디자인을 잘하진 않지만 사업수완이 좋아서 디자인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멋진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소한 디자인 사업에 뛰어들려면 그 회사의 대표가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각을 알지 못하면 이 디자인이 잘된 디자인인지 잘 못한 디자인인지 알 방법이 없고, 컨펌을 하는 방식조차 제대로 몰라 들어오는 디자이너마다 힘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수다. 주위 디자이너 후배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저희 회사 대표님이 디자인에 대해 몰라서 저희가 머리채 잡고 끌고 가요" "너무 힘들어요"
단순히 사업가로서 잘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일을 배워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만의 디자인 사업을 진행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디자인에 대한 퀄리티를 적정선까지 올려놓고, 그다음 사업적인 마인드를 가져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오너가 된 다음 오너마인드를 가져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에서는 디자이너들에게 자기 사업한다고 생각하라고 이것, 저것 모두 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를 한다.
디자이너는 슈퍼맨 원더우먼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일단 디자인'부터' 잘해야하고, 사업적인 부분은 그 다음 단계임을 잊어선 안된다.